“나이도 있고 해서 제 차례가 있을까 싶은데 항상 제가 낄 자리가 있더군요. 일 열심히 하면 운도 따르잖아요. 제가 딱 그래요.”
환갑을 훌쩍 넘긴 배우 나문희(65)의 활동 반경은 여느 20대 인기스타도 엄두를 못 낼 만큼 넓다.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장밋빛 인생> <굿바이 솔로> 를 포함해 <소문난 칠공주> 의 못 말리는 할머니 남달구까지. 나문희 없는 인기 드라마는 상상하기 어렵다. 소문난> 굿바이> 장밋빛> 내>
스크린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주먹이 운다> 와 <너는 내 운명> 에서 관객의 코끝을 시큰하게 했던 그는 9일 개봉하는 <열혈남아> 에서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러 온 깡패 재문(설경구)에게 모성을 베푸는 국밥 집 주인 김점심 역을 맡았다. “그 연세에 욕심도 참 많지”라는 시기어린 말을 들을만하다. 그러나 그는 “욕심 때문에 많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워낙 일을 좋아하니까”가 그가 말하는 다작의 이유. 열혈남아> 너는> 주먹이>
“제 욕심 부릴 새도 없이 일이 그득그득하다”는 그는 “기력이 떨어져 출연 제의를 많이 마다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지난 주말 동안 눈을 붙인 시간이래야 하루 평균 고작 2시간 정도. 6일 첫 전파를 타는 MBC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 촬영 때문이다. “‘정준하(아들 역할을 맡은 코미디언)와 붕어빵이다’며 녹화시간까지 저한테 맞춰 바꾸니 힘들어도 다 하게 됩니다. 집에 들어가면 영감이 ‘잠 자’ 그 말 밖에 안 할 정도로 녹초가 되요.” 거침>
나문희는 1961년 MBC공채 성우 1기로 연기에 입문했다. 정규 연기 교육과정을 밟은 적은 없다. 그는 “타고난 배우도 아니다”고 고개를 젓는다.
“방송국 입사 후 이리 저리 연기 배우려고 나름대로 애 많이 썼어요. 그 중 외화 더빙이 많은 도움이 되었죠.” 성우 시절 그는 마를린 먼로, 미아 패로, 글로리아 스완슨 등을 대신해 천의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자연스레 발성법을 터득했다. “외국 여배우들 캐릭터가 제 각각이잖아요. 목소리 연기하며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의 연기에 대한 열성은 <열혈남아> 에서도 빛났다. 촬영 초기 그는 안락하지만 장막에 둘러싸인 듯한 전주의 한 호텔 방을 이틀 만에 뛰쳐나와 곧바로 스태프가 묵고 있는 모텔로 달려가 합류했다. 배역의 성격을 파악하고 감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대본을 보니 가장 힘든 배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웠고, 이를 어쩌나 대책이 안 서더군요.” 열혈남아>
그악스러우면서도 물기 어린 연기로 이 시대의 모성을 재구성하는 그는 화면 밖에서도 어머니 같은 존재다. <열혈남아> 촬영현장에서 그는 여러 먹거리로 스태프와 동료 배우를 다독였다. “먹을 것 챙겨주는 게 제 취미 생활이에요. 다들 자식 같아서 제가 대접 받기 전에 자연스럽게 베풀게 되요.” 열혈남아>
그는 최근 음반 녹음까지 했다. <소문난 칠공주> 에서 오승근의 노래 <있을 때 잘해> 를 개사해 인기를 모은 <돌리고 송> 을 녹음한 것. “주변에서 잘한다 키워주면 제가 그냥 다하는 성격이거든요. 그게 문제예요.” 코믹한 가사와 몸놀림 때문에 TV 오락프로그램 출연 섭외도 빗발친다. 그러나 그는 “그냥 (드라마에서만) 귀엽게 봐주세요” 라며 모두 사양했다. 돌리고> 있을> 소문난>
“영화와 TV 드라마 둘 다 좋다”는 그를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을 듯 하다. 마음에 와 닿는 배역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 때문. “처음엔 거부하다가도 막상 대본을 보면 제가 좋아서 달려 들어요. 그렇게 일하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 같아요. 그게 행복한 거죠.”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최흥수 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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