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내ㆍ외국인 자본 가릴 것 없이 ‘한국 탈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나왔다. 외국인은 성장잠재력과 지정학적 위험을 우려해 돈을 빼가고, 내국인은 나쁜 기업환경을 탓하며 외환 자유화를 계기로 해외로 나간다. 더구나 이 통계는 북한 핵실험 이전의 상황만 반영한 것이어서 북핵 리스크가 가중되는 지금, 비상한 경각심이 요구된다.
한은에 따르면 1~9월 외국인의 직접투자 순유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5% 수준인 7억 달러대로 급감했다. 까르푸와 월마트의 철수가 큰 요인이지만 전반적 분위기는 심상찮다. 반면 국내기업의 직접투자 순유출은 50억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50% 가까이 늘었다. 직접투자는 공장을 짓거나 상장업체 지분을 한꺼번에 10% 이상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간접투자인 외국인의 주식투자도 9월까지 29억 달러 이상의 순유출을 기록했고 내국인의 해외 주식투자로 170억 달러를 넘는 돈이 밖으로 흘러나갔다.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처지에 이 정도 규모의 자본이 특정 기간에 이동한 것을 놓고 난리난 듯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시장의 수익성과 성장성 하락, 불안한 한반도 정세, 과잉 외환자유화 등 구조적 요인에 의해 이런 현상이 촉발됐다면 심각한 문제다. 소비ㆍ투자심리 위축에 따른 만성적 저성장 조짐이 보이고 환율ㆍ유가 등의 변동성이 커지는 터에 돈마저 한국을 기피한다면 위기가 닥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부는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고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때마침 ‘비전 2030’ 민간기획단은 세계 주요국의 선진화 성공ㆍ실패 사례를 분석해 작고 자율적인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리더십, 안정된 정치체제, 친기업적 세제, 규제 완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성 등을 선진국의 관문으로 꼽았다. 우리 경제가 자본의 국내외 선순환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이 관문을 넘어야 한다. 정부가 그런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내년 사업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기업의 불안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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