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 모인 자리에서 한 사람이 다른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면 도청에 해당할까.
통신비밀보호법 3조 1항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A와 B의 대화를 C가 숨어서 녹음한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흥신소 직원 등이 다른 사람의 대화 장소에 녹음기를 설치하거나 감청장치를 이용해 전화통화 내용을 엿듣는 것 모두 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A와 B의 대화를 A나 B가 몰래 녹음했을 때는 처벌받지 않는다.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와 B의 대화를 C가 동석해 녹음했을 경우는.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봤으나 법원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선모(44)씨는 지난해 7월 자신이 투자한 성인오락실 영업이 부진하자 동업자 2명이 만나는 자리에 소형녹음기를 지니고 가 이들의 대화를 녹음했다. 약점을 잡아 오락기를 처분하려는 속셈이었다.
대법원 1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30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선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른 2명의 대화가 녹음 내용의 주를 이뤘지만 선씨가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대화에 일부 참여한 만큼 선씨를 ‘제3자’가 아닌 대화 당사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 함께 있었더라도 대화에 참여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녹음할 목적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면 처벌될 수 있다”며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대화 당사자라는 게 인정돼야 처벌을 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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