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크게 움직이고 있다. 가을 이사철을 맞아 서울 강남 등의 전셋값이 꿈틀거려 집값을 밀어 올리더니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신도시 발언을 타고 폭발하듯 번지고 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집값만은 잡겠다던 정부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현실에 넋이 빠졌을 만하다.
정말 큰 걱정은 내 집 마련이나 집 넓히기 꿈이 아득해지면서 서민층이 느끼는 좌절감이다. 이들을 더 이상 자포자기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실패 연구'에 매달려야 할 필요가 있다.
■ 로버트 소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기업 15개사의 경영파탄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한 결과 대실패는 큰 성공 직후에 찾아온다는 공통점을 찾았다('When Giants Stumble'). 성공과 실패는 상대적이어서 어떤 성공에든 실패의 싹이 움트게 마련인데, 성공한 경험에 경도된 최고경영자의 오만과 집착 때문에 실패의 싹을 잘라내지 못한다.
결국 성공 체험과 무관한 새로운 최고경영자를 맞지 않고는 진정한 실패 극복은 어렵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기업과 달리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바꿀 수야 없지만, 이 정권이 어떤 성공에 어떻게 집착했는지를 헤아려 볼 수는 있다.
■ 이 정권의 성공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것, 2004년 탄핵 위기를 넘기는 동시에 17대 총선에서 압승한 것이다. 두 성공은 모두 대중의 힘이 이뤄준 것이어서 정권은 거기에 도취하고 집착했다.
'강남 죽이기'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부동산정책의 출발점도 어쩌면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의 불만을 이유로 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성공 경험에 대한 과신이 시장의 경고를 가렸다. 그것이 거꾸로 '강남 살리기'로 귀결하고, 대중적 삶의 기반을 흔든 아이러니는 대통령의 '명품' 발언과 함께 그저 웃어넘기기 어렵다.
■ 강남지역은 재건축 등 수요 압력에 대응할 공급 여력이 있었다. 이를 억지로 누르자 인근지역 새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 '풍선 효과'가 곧바로 나타났다. 이제는 전국 각지의 수요가 강남으로 몰리는 '깔때기 효과'까지 등장했다.
신도시나 대체도시, 지방개발 등을 이유로 풀린 돈이 깔때기 구멍인 강남으로 모여든다. 강력한 조세정책으로 유속을 늦출 수는 있어도 흐름 자체를 막진 못한다. 발이 가려우면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긁어야 하듯, 공급 부족으로 생긴 강남의 깔때기 구멍을 직접 메우지 않는 한 깔때기만 자꾸 커진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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