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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성배와 칼' 여성의 힘이 평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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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성배와 칼' 여성의 힘이 평화를 부른다

입력
2006.10.2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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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아이슬러 지음ㆍ김경식 옮김 / 비채 발행, 500쪽, 2만3,000원

미국의 여성 운동가 리안 아이슬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고 아버지가 게슈타포에게 끌려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여섯 살 때 가족을 따라 쿠바로, 다시 열 네 살 때 미국으로 도망쳤다. 이 같은 체험을 하면서 그는 의문을 가졌다. 사람은 왜 서로 괴롭히고 학대하는가. 왜 다른 사람에게 잔혹한 짓을 하는가. 대체 무엇이 인류를 전쟁과 파멸로 이끄는가.

답을 찾기 위해 예술 고고학 종교 사회과학 역사 등을 아우른 뒤 그는 사회를 두 유형으로 분류했다. 인류의 절반이 다른 절반 위에 올라서서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중심 사회체제(칼의 문화)와 협력과 공존을 중요시하는 공동협력 사회체제(성배의 문화)다. 여기에서 성배는 생명과 탄생을 찬양한 여신을 상징하는 여성의 문화다. 반면 칼은 죽음과 대립을 상징하는 남성 문화다. 인류가 오랫동안 전쟁에 매달린 것은 칼이 지배했기 때문이란다.

아이슬러에 따르면 신석기는 평화로운 시대였다. 여신 중심의 종교가 성행했고 모계를 중심으로 혈통과 상속이 이뤄진 성배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 평화는 쿠르드간족, 훈족 등 유목민의 침략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철제 칼로 여신의 문화를 무너뜨리고 여성을 역사에서 삭제하고 차별했다.

성경의 여성 차별도 극심했다. 예수 시대에는 남녀가 평등했으나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후 칼이 지배하는 세상, 곧 남성 지배 중심 체제가 됐고 그것은 지금도 우리를 옥죄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칼의 세계가 공동협력 사회로 변할 것이라는 낙관을 피력한다. 전쟁의 기운이 여전하지만 여성의 힘이 강해질수록 평화, 공존의 목소리 또한 커진다는 것이다. 도식적인 이분법이 거슬리지만,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학습은 높이 살만하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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