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시란 내게 있어서 스스로의 생을 점화시킨 불꽃 그 자체였다. 그러니, 내 삶의 밖에서 나를 어루만지는 운명의 손길이 나를 시인이라는 필연 속으로 밀어넣었다고 믿었을 밖에!”(87쪽)
삶의 허무를 풍경의 이면처럼 물끄러미 응시해온 김명인(60ㆍ사진) 시인이 첫 산문집 <소금바다로 가다> (문학동네)를 펴냈다. “다시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나는 나를 고해하는 이런 쑥스러운 글들을 더는 한 자리에 펼쳐놓지 않을 것만 같다”는 시인의 내밀한 첫 고백이다. 소금바다로>
1973년 “운 좋게도” 시인이 됐다는 그는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 <파문> 등 8권의 시집을 통해 쓸쓸한 삶의 풍경을 특유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아름답게 음각해왔다. 이번 산문집은 “기억도 일종의 힘이라면 내 시가 선별해낸 풍경 속에도 그 힘줄이 무수히 벋어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시인이 시의 근원으로 간직하고 있는 첫 경험, 최초의 심상을 찾아 나선 여정이다. 경북 울진의 짠내 나는 바닷가에서, 무능력한 아버지와 애처롭도록 억척스런 어머니가 드리운 가난의 그늘. 장난처럼 지망했던 국문과에 합격한 의대 지망생이 조지훈의 시론 강의와 소월시집, 신경림의 <농무> 를 읽으며 운명처럼 시의 열병을 앓는 과정이 읽는 이를 감염시킨다. 농무> 파문> 머나먼> 동두천>
채울 길 없던 결핍이 도벽으로 돌출됐던 중학교 시절. 친구의 국어교과서를 훔쳐 집으로 돌아오던 길, 부둣가의 빈 창고 구석에 오래 쭈그리고 앉아 울던 기억은 도벽의 두려움만큼이나 시인의 유년을 어둡게 채색했고(45쪽), 가족사의 불행을 시의 거름으로 삼은 시인은 자신이 흑암이나 파먹고 사는 상한 짐승처럼 느껴질 때마다 시인의 운명이 필연이었다고 느낀다.(68쪽)
“시란 세계의 아름다움을 각인시키기 위해 씌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의 마모를 견뎌내려는 개별자의 고독 때문에 선택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시의 세계란 긍정의 자리가 아니라 부정적 일락(일락)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190쪽)는 게 시인의 불우한 시론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이유로 시를 읽는다. 그렇다. 행복에 겨울 때 누가 시를 찾겠는가. 그것이 시인의 불우한 운명인 것을.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