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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커버스토리 - '놀이터가 바뀐다' 서울숲 무장애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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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커버스토리 - '놀이터가 바뀐다' 서울숲 무장애놀이터

입력
2006.10.2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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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골목대장이 행세하던 시절이 있었다. 코흘리개 사이에도 위계질서가 있어서 골목대장이 뜨면 동네 졸개들이 몰려나와 공을 찼고, 땀이 흠뻑 배면 누구네 대문 앞에 죽 늘어앉아 같이 만화책을 보거나 동네 아주머니들의 추임새에 꾀여 노래자랑도 했다. 그 시절 동네 골목은 개구장이들에겐 무한대로 뻗은 '상상 발전소'였다. 축구장이자 가요무대, 소꿉놀이터이자 공부방이었다.

주거문화의 주류가 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골목대장은 사라졌고 아이들은 아파트 한구석에 마련된 놀이터로 갔다. 그네와 시소, 미끄럼틀이 없는 곳은 이제 놀이터가 아니었다. 효율과 규격화를 중시하는 산업화 시대가 아이들을 아파트 동과 동 사이 네모난 자투리 땅에 몰아넣는 동안, 아이들의 상상력도 사각의 틀 안에 고정된 것은 아닐까.

붕어빵 놀이터로 인한 '상상력의 고사(枯死)'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색 놀이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예술놀이터, 윗잔다리 놀이터에 이어 20일에는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 무장애 놀이터도 개장했다. 내주쯤이면 거꾸로 놀이터도 문을 연다. 창의의 시대는 놀이터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와, 거인이잖아!”

서울 성동구 서울숲 무장애 놀이터의 개장식이 있던 20일 오후 2시. 거대한 천막이 스르르 걷히며 무장애 놀이터의 상징물이 드러나자 소풍 나온 아이들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3층 건물높이 촘촘한 철물구조로 된 거인상은 한쪽 손으로 땅을 짚고 이제 막 일어서려는 듯한 자세. 정글짐(jungle gymㆍ아이들이 오르고 내리고 건너뛰고 구르고 쉴 수 있게 만들어놓은 입체) 구조여서 지상에서 몸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타고 거인의 몸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허벅지에서 미끄럼을 타고, 발바닥을 통해 ‘야호’ 함성도 지르면서 상상의 공간을 맘껏 뒹굴었다.

진형욱(7ㆍ서울 성동구 성수동)군은 “<잭과 콩나무> 에 나오는 구름 위에 사는 거인같다”고 신기해했고, 김연희(9ㆍ서울 성동구 행당동)양은 “사람 몸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기분”이라며 눈을 빛냈다.

‘상상, 거인의 나라’라는 부제가 붙은 무장애 놀이터는 서울시가 내놓은 서울숲내 숲속놀이터 옆 350평 남짓한 공간에 대웅제약이 사회공헌활동으로 공사비를 대고, 임옥상미술연구소가 기획 및 설계시공을 맡아 완공한 놀이터다. 일련의 놀이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임옥상미술연구소가 국내 최초로 ‘무장애(無障碍)’ 개념을 도입해 조성한 곳이기도 하다. 무장애는 말 그대로 ‘장애가 없다’ 는 뜻이다.

놀이터라면 으레 그네나 미끄럼틀, 시소 등 활동적인 놀이기구를 연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거인상 외에 설치된 시설물이라고는 돔 형태의 둔덕 안쪽 기슭에 설치된 일자형 미끄럼틀과 꿈틀꿈틀 땅 위를 기는 뱀, 그 대각선 방향에 납작 엎드린 두꺼비 모형이 전부. 그러나 기획디자인팀 라윤주 팀장은 “‘무장애’를 ‘장애아동(만)을 위한 공간’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육체의 장애는 기본, 더 직접적으로는 ‘상상력의 장애’에서 해방된 공간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장애아와 비장애아, 남녀노소 다 함께 어울려 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어요. 장애아를 위한 놀이터는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으니까요. 표준화된 놀이시설물 보다는 예술적 감성을 키우고 상상의 날개를 펴고 교감을 나누는 곳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요.”

가만 들여다보면 이 공간에는 이야기가 담겼다. 천적인 뱀과 두꺼비가 호시탐탐 서로를 노리고 거인은 그들 사이의 평화유지군격이다. 조형물 모두 환경조각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만 무엇보다 각각의 연결고리를 이용자가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도록 여백으로 남겨뒀다는 게 장점이다. 군데군데 끊어진 뱀의 몸통에는 한쪽 구멍에다 이야기를 속살거리면 그 반대쪽에서 들을 수 있는 전화기 놀이장치도 숨어있다. 돔 기슭에는 잔디를 깔아 언덕바지에 누워 따스한 햇살을 즐길 수 있게 했다.

평범해보이지만 장애우에 대한 속 깊은 배려도 눈길을 끈다. 송수신 장치는 휠체어에 앉은 아이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넓고 낮은 곳에 배치됐다. 거인상에는 지상에서 올라가는 사다리 외에 휠체어를 이용해 거인의 엉덩이 지점까지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폭 1.6m의 나선형 길이 별도로 설치됐다. 자연 아치형의 진입로는 충분히 넓은데다 천정과 벽에 재미있는 동물벽화를 그려넣어 휠체어에 앉아 쳐다보면서 상상의 동물들과 만나는 재미도 추가했다.

이날 거인상을 보기위해 아이들과 함께 서울숲을 찾았다는 한경옥(36ㆍ서울 성동구 행당동)씨는 “기존 놀이터랑 워낙 틀려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조형물이 예술작품 수준인데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올라가보며 놀 수 있으니 아무래도 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되지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 거꾸로 그네·방귀뀌는 시소? '놀이터 바뀐다'

어린이 놀이터가 변하고 있다. 창의력을 중시하는 정보화시대는 놀이터에도 천편일률적인 시설물 대신 상상과 꿈의 세계를 구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어린이만을 위한 공간도 아니다. 아이들은 뛰놀고 어른들은 좁다란 평상을 내놓고 앉아 한담을 나누던 옛 골목길처럼 세대를 초월하고 장애를 넘어 놀이와 휴식, 예술체험과 치유가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세상에 단 하나를 외치는 재미난 놀이터들이 속속 개장하고 있다.

▦예술문화 어린이놀이터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의 허름한 놀이터를 시공모전을 통해 리모델링해 독특한 예술동산으로 가꾼 곳. 지난 5월 개장 첫 주말에 200여 명이 방문하는 등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다. 시흥시가 시 구역 내에서도 가장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4억여원의 공사비를 투여하고 임옥상미술연구소가 기획, 시공했다.

490평 놀이터는 소외지역 어린이들에게 예술체험을 통한 창의력 계발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 맞춰 시청각과 촉각을 고루 발달시킬 수 있도록 꾸며졌다. ‘나는 까치’라는 상징 조형물이 안테나처럼 설치된 2층짜리 목조 공간은 아이들이 밧줄을 타고 오르거나 통로를 이용해 밖으로 이동하는 등 다양한 공간체험이 가능하다. ‘방귀 뀌는 시소(여럿이 타는 시소)’, ‘나는 허클베리핀(거꾸로 집)’, ‘나는 로빈훗(색채와 공간 놀이)’, ‘나는 공부중(지압 미로)’ 등 기발한 부대시설도 마련됐다. 목조건물 뒤쪽으로는 간단한 공간을 위한 마당과 주민들을 위한 체력단련 공간도 있다.

▦ 거꾸로 놀이터 = 서울문화재단이 ‘문화가 있는 놀이터’ 사업의 하나로 현대건설과 제휴해 서울 성북구 돈암동 재건축아파트 내에 짓는 130평 규모 놀이터로 지난 5월 시공 때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27일 완공식을 갖지만 아파트 공사가 아직 끝나지않아 내년 1월께나 일반에 공개된다.

거꾸로 놀이터는 말 그대로 모든 게 거꾸로이다. 다락방이 있는 아담한 양옥집도 거꾸로 세워져있고 자동차 모형의 그네도 거꾸로 이며 쓰레기통도 거꾸로 되어있다. 조각가와 미술가 등이 개발에 참여한 시설물은 어린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의의 공간을 추구한다. 현대건설 상품개발실 유송영 차장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놀이터의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 공감하는 입주예정자들의 관심과 호응이 상당히 높다”며 “입주 후 고객만족도 등을 검증한 뒤 타 단지에도 문화놀이터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은 거꾸로 놀이터의 개장에 그치지않고 내년 봄께는 놀이터를 통해 지역주민이 소통하는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제공, 명실공히 연령과 성별을 넘어선 공동문화쉼터로 꾸밀 계획이다.

▦ 윗잔다리 놀이터 =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에 지난해 문을 열었다. 안규철 이중근 전인식 등 조형예술작가들이 구청의 지원금을 받아 디자인했는데 다양한 신체부위를 형상화한 기발한 놀이기구들로 큰 인기를 얻고있다. 여성의 뾰족구두 모양을 딴 미끄럼틀, 발바닥 모양의 나무 미로, 귀 모양을 본뜬 소리체험 기둥 등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20일 개장한 서울숲 무장애 놀이터와 대구 달서구가 2000년부터 놀이터 개조사업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다양한 어린이테마공원, 여의도 국회의사당내에 조성될 무장애 놀이터 등 상투성을 벗고 상상력으로 빚은 공간들이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서울문화재단 서동진씨는 “천편일률적인 기존 놀이터는 아이들에게도 이롭지 못하지만 주민들에게도 버려진 공간”이라면서 “앞으로의 놀이터는 주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체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 무장애놀이터 기획자 임옥상 "동심을 구하고 싶어"

“규격화된 산업사회에, 그리고 나 자신의 상상력에 도전중입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기수였던 임옥상씨가 놀이터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적 실천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20일 개장한 서울숲 무장애놀이터는 임씨가 이끄는 임옥상미술연구소가 주도한 두번째 작품이다. 첫번째는 지난 4월 경기 시흥시 신청동에 문을 연 ‘새로운 예술문화 어린이 놀이터(이하 예술놀이터)’이다. 언뜻 아구가 맞지않아 보이는 민중미술과 놀이터 프로젝트의 연결고리는 우리 사회의 미래와 예술의 역할에 대한 오랜 고민을 통해 도출해낸 것이다.

“1980년대의 거대담론이 무너진 이후 너무나 쉽게 민중을 폐기처분한 기성 사회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는 그는 “혼돈과 방황 끝에 결국 기댈 수 있는 건,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어린이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이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가장 적극적인 예술적 실천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예술놀이터가 지자체 공모전 당선작이어서 지자체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데 비해 이번 무장애 놀이터는 규격화된 ‘조달청 놀이터’로부터 동심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구체화한 것이 특색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큽니다. 그런데 조달청 놀이터는 안전사고 예방에만 급급할 뿐, 획일적인 시설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해치고 사고력을 제한한다는 것은 전혀 감안하지 않아요.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놀이터는 그래서 없는 것만 못합니다.”

임씨는 차라리 시골에서 태어나 하루종일 논두렁 밭두렁을 쏘다니며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던 지금의 중장년 세대들이 어떤 면에선 훨씬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 세대들이 지금 교육이나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는 미명아래 아이들을 일방통행식으로 훈육하고 자연과 벗삼을 기회를 차단하고 인위적인 첨단기술문명쪽으로 내모는 것은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임씨는 앞으로도 매년 1~2건씩 무장애 어린이놀이터 설립에 나설 계획이다. 올해만 해도 서울숲 외에 성동구 내에 한곳 더 무장애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내에도 무장애 놀이터 착공을 앞두고 있다. 그 어느 곳도 똑같지않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과 환경, 자연과 휴식이 결합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임씨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친환경’이나 ‘생태주의’ 등을 일상의 용어로 만든 것처럼 육체적인 장애는 물론 정신적인 교감이나 성숙을 제한하는 상상력의 장애까지 아우르는 ‘무장애’ 개념도 우리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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