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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署 형사 5인방이 밝히는 서래마을 수사 3개월 秘話/ "영아, 아버지 쿠르조와 쏙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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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署 형사 5인방이 밝히는 서래마을 수사 3개월 秘話/ "영아, 아버지 쿠르조와 쏙 빼닮았다"

입력
2006.10.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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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범인이 장-루이 쿠르조(40), 베로니크(39) 부부라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100% 완벽할 때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한국 경찰의 수사 실력을 재확인시킨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 수사팀이 25일 가슴에 묻어두었던 수사 비화(秘話)를 공개했다. 이날 저녁 서울 방배서 앞 고깃집에서 김갑식 방배서 수사과장 등 5명의 수사팀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7월23일 사건 발생부터 이달 25일 프랑스 경찰의 감사 방문을 받을 때까지 3개월 간의 좌절과 환희가 겹친 기억들을 하나씩 더듬어 나갔다.

●영아들의 얼굴은 쿠르조의 판박이

현장에 도착한 수사팀의 눈에 처음 띈 것은 집주인 쿠르조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장면이었다. 담배도 간신히 물고 있을 정도였다. 경찰서에 올린 첫 보고는 “냉동고 속에 죽은 지 1년 정도로 보이는 영아 사체 2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천현길 팀장은 “나중에 밝혀진 것처럼 3년이나 보관했으리라고는 처음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처음에는 사건이 쉽게 풀릴 것으로 생각했다. 수사 이틀째인 2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찬찬히 뜯어본 영아들의 얼굴이 쿠르조를 쏙 빼 닮았기 때문이었다. 윤홍덕 형사는 “또렷한 이목구비가 쿠르조와 그대로 겹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조용수 형사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너무나 닮은 얼굴, 벌벌 떨고 있던 첫 모습. 쿠르조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수사 4일째인 26일 쿠르조는 유유히 프랑스로 돌아갔다. 수사팀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만 더 조사하면 분명히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출국 전날 밤 서래마을 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쿠르조를 재추궁하고 단서를 찾았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쿠르조의 동의를 받아 출국을 막자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지만, 아직 참고인 신분에 불과한 외국인을 잡아두었다 어떤 외교문제가 생길지 모를 노릇이었다. 김 과장은 “우리라고 욕심이 없었겠느냐”며 “하지만 당시 절차를 확실하게 지키고 참았던 덕분에 이번 수사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쿠르조가 숨진 영아들의 아버지라는 DNA 검사 결과는 쿠르조 출국 이틀 뒤인 28일 나왔다.

●베로니크, 비닐봉지 때문에 꼬리 밟히다

처음에는 쿠르조가 바람을 피웠을 것이라 생각해 필리핀 가정부 H씨, 한국인 가정교사 등 주변 여성들을 조사했지만 쿠르조의 사생활은 깨끗했다. 외부인이 집안에서 아기를 낳고 냉동고에 넣을 수 있는지도 실험했다. 내부 보안장치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가족이 아닌 임신한 누군가가 들어올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베로니크가 확실한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영아 시체를 싼 비닐봉지 때문이었다. 서울 동대문지역 한 유아용품 가게의 상표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이 가게는 2004년 1월 문을 닫았지만 베로니크가 몇 번 드나들었다는 진술도 얻어냈다. 비닐봉지 하나가 아기들의 엄마이자 유력한 용의자를 베로니크로 좁혀주는 순간이었다.

●전직 간호장교의 내조로 뚫은 난관

하지만 여전히 수사팀을 괴롭힌 문제는 베로니크의 임신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산부인과를 300여 곳이나 돌고, 베로니크를 주변을 샅샅이 훑었지만 단서는 없었다. 조 형사는 “쿠르조의 컴퓨터에 보관된 사진 1만 여장도 뒤졌지만 배가 나온 베로니크의 모습은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 4일째인 26일에는 베로니크가 2003년 12월 급성패혈증으로 자궁적출수술을 받아 아기를 못 낳는다는 진술까지 나왔다. 수사팀은 절망했다. 사건은 또다시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 했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뜻밖에 실마리는 간호장교였던 천 팀장의 부인에게서 나왔다. “반대로 생각하면 간단한 것 같은데요. 아기를 낳다가 문제가 생겨 급성패혈증이 걸릴 수도 있죠.” ‘발상의 전환’이었다. 수사팀은 눈이 번쩍 뜨였다. 바로 119 출동기록을 확인해 베로니크가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서울 강남의 한 대학병원을 찾아냈고 집도의를 만났다.

“아기를 낳은 뒤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죠.”의사의 입만 쳐다보던 수사팀은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 저도 모르게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수사팀은 금새 몸서리쳤다. 서래마을로 이사오기 전에 아기를 낳았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윤 형사는 “이삿짐 속의 아기 사체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며 몸을 떨었다.

이렇게 수사 1주일 만에 사건의 윤곽이 모두 드러났다. 쿠르조 부부 말고는 없었다. 이어 8월6일 병원에서 얻은 베로니크의 DNA를 영아들과 대조, 베로니크가 영아들의 어머니임이 과학적으로 굳어졌다. 김 과장은 “상식에 어긋나는 사건일수록 기본을 지켜가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며 “우리는 순리대로 갔고, 원하던 결과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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