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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첫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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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첫 발자국

입력
2006.10.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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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네 가족과 차를 타고 서부역 뒤편을 지나던 중 앞 자리에 앉았던 올케가 외쳤다. "저 사람 은행 털었다!" "어디? 어디?" 다급히 물으며 창 밖을 훑어보니 시커먼 자루를 짊어진 남자가 눈에 띈다. "저 사람 은행 턴 거 어떻게 알았어?" 신통한 한편 긴가민가해 묻자 올케는 의기양양 대답했다.

"나도 은행 털어봤어요." 엥? 난 또, 은행(銀行)털이를 본 줄 알았네. 하긴. 내 터무니없는 오해를 짐작도 못한 올케가 달뜬 목소리로 얘기하는 은행(銀杏)털이의 즐거움을 은행잎 굴러가는 소리처럼 흘려들으며, 가을빛이 완연한 거리를 내다봤다.

구르몽, 나는 좋다, 낙엽 밟는 발자국소리가! 색색 단풍 든 가랑잎이 폭신히 깔린 길을 걷고 싶구나. 그 전에, 단풍 든 이파리들을 가득 매단 나무들을 보고 싶구나. 늦었을까? 어느덧 가을이 깊어간다.

남산 꽃길에 가봐야지. 케이블카 하우스 건너편에서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그 3km 꽃길은 봄날의 벚꽃도 절색이지만 가을날 선홍색으로 공중을 물들이는 단풍나무들이 설레도록 아름답다. 그곳엔 봄이 좀 늦게 오고 가을은 좀 빨리 온다. 낙엽들이 바람에 쏠려 길 위에서 외치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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