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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침묵의 국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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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침묵의 국민장

입력
2006.10.2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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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이 타계하고 국민장이 치러지지만,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는 그리 진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신문들은 최규하 전 대통령의 별세에 대해 의례적 보도를 하거나, 지도자로서 그가 끝내 역사적 진실 밝히기를 거부한 데 대해 애석해 하고 있다. 그의 생애와 평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던 10ㆍ26이 분수령이다. 근검성실한 공직자로서 국무총리에까지 오른 생애와, 온갖 추측과 비밀에 휩싸여 국가권력을 탐욕스런 군인들에게 내준 대통령의 여생이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헛된 욕심과 좁은 시야에 갇혀 민주화를 지연시켰다"고 그를 비판하고 있다. 최 대통령은 1980년 '서울의 봄'에 민주화 세력의 계엄령 해제 요청을 듣지 않았고, 마침내 5ㆍ18 광주민주화 운동과 유혈의 비극을 맞았다.

결국 8월 "학생소요와 광주사태에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났다. 이 길고 지루한 과정에 그 자신의 정치적 입장, 혹은 야망이 군인들의 집권욕과 어떻게 얽히며 전개됐는지가 비밀로 남았다.

의혹으로까지 비친 그의 비밀이 국가에 대한 공헌 부분을 지워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 그는 자신을 '하늘에 오른 용'에 비유하며 굳게 침묵을 지켰다. 침묵은 언제나 금(金)인가? 역사 해석의 열쇠를 쥔 정치인에게 비밀은 그의 사적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장 그르니에는 "항상 책망하는 침묵과, 찬성하는 침묵이 존재했다. 우리는 언제나 공개적으로 항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침묵의 부정적인 속성은 망각을 조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르니에의 말을 결론 삼자면, 침묵은 악과 협력하는 것이다.

▦ 정치가는 흔히 "나는 후세의 역사가가 평가할 것"이라는 말 뒤로 몸을 숨긴다. 침묵과는 대조적으로 최 전 대통령에게는 꼼꼼하게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언젠가 그 기록이 햇빛을 보고 마침내 '서울의 봄'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를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 전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나치 친위대 근무 전력을 밝혀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너무 늦었다'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고백은 적어도 그의 늙은 영혼을 편안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오늘 오랜만에 국민장을 치르면서 한 가닥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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