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적 부분보다 물러날 때가 됐다는 차원에서 (사퇴를) 이해해달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25일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대북 포용정책 실패 때문에 사퇴하는 게 아니다”는 뜻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이 장관은 결국 북한 핵실험 강행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측면이 강하다.
이 장관의 사퇴 결심은 자발적이고,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이 장관은 9일 핵실험 직후부터 “장관직에서 물러나야겠다”는 의사를 주변 인사들에게 밝히기는 했다. 그러나 애초 그는 이번 외교안보라인 개편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정부 소식통은 “청와대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을 계기로 외교안보부처 장관급 인사 교체 방안을 5~6개 마련했지만, 이 방안은 모두 이 장관의 유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주초 반 장관에 이어 윤광웅 국방장관 교체설 등 외교안보라인 대폭 개편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이 장관도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3일 임시 국무회의에서도 사퇴의사를 표명한 뒤 청와대에 노무현 대통령 면담 신청을 했고, 24일 대통령과 단독 오찬을 갖고 사퇴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 장관이 공개적으로 밝힌 사퇴의 변은 ‘정쟁 방지 차원’이다. 그는 “모두 다 떠나고 저 하나 남으면 공세의 타깃은 제가 될 텐데 그럴 때 정쟁은 지속적으로 가중되지 않겠느냐”며 “그런 게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으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신만 홀로 통일부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으면 또다시 정쟁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말이다. 결국 보수세력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공세를 사전 차단하는 차원에서 자신을 희생양으로 바쳤다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특히 이 장관은 “(핵실험을 막지 못하자) 마치 비가 오지 않으면 그게 왕의 책임인 것처럼 비판했다”고 야당과 수구 언론에 대한 답답함도 토로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정치공세가 상당히 강해서 장관들이 원만하게 직을 수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이 장관이 사퇴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섭섭함이었다. 2월 장관 취임 후 꼬여가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북한은 이 장관의 제의를 무시했다. 결국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실시하면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따라서 이 장관은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기만 하는 북한에 대해 자신의 장관직 사퇴로 무언의 경고 메시지를 던질 필요가 있었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압력설도 사퇴 이유의 하나로 제기했다. 외교 소식통은 “핵실험 직후 미국이 이 장관 교체와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사업 중단을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2대 전제조건으로 강력히 요구해 정부가 이를 두고 고심했다”고 전했다. 이 장관의 사퇴는 대북 강경책을 요구하는 미국쪽에 한국 정부의 성의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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