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창조경영'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이미 실체적 진실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창조 경영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의 차차세대 반도체 기술인 'CTF'(Charge Trap Flash)를 꼽을 수 있다.
황창규 사장은 최근 전하를 전류가 흐르는 도체가 아닌 부도체에 저장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35년동안 풀리지 않았던 업계의 숙제를 풀었다. 이 기술로 세계 최초의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를 개발, 앞으로 10년간 250조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되는 거대 시장을 창출했다.
창조경영 성공사례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이 세계 최초로 이동 중 100Mbps, 정지 중 1Gbps급 속도로 데이터를 무선 전송하는 4G 기술의 공개 시연에 성공한 것도 창조 경영 모델이다. 또 출시 6개월여만에 전세계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의 LCD TV '보르도'제품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제품은 기존 TV 형태를 파괴한 와인잔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과 개발 초기부터 관련 부서들이 모두 참여,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개발을 통해 대박을 터뜨렸다.
우국충정의 메시지
삼성은 창조 경영 성공사례들을 그룹 계열사로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재계일각에선 창조 경영을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혁신운동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창조경영은 삼성만의 경영 화두라기 보다 21세기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우국충정의 메시지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사실 이 회장은 줄곧 국가 경쟁력 강화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피력해왔다. 이 회장은 평소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국민, 정부, 기업이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1년 5월 사장단 회의에선 "규모는 작지만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네덜란드처럼 작지만 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며 강소국론을 제창하기도 했다.
최근 경영 환경의 변화는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ㆍ미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시장 개방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인데다가 글로벌 기업들의 합종연횡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 쇼크처럼 돌발 변수들도 끊임없이 튀어 나오고 있다. 시대 상황이 창조적 사고를 점점 더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단체의 시각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창조적으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고 판단을 내려야 겠지만 이 회장이 국정감사 때면 해외로 나가서 이런 얘기들로 관심사를 이전시키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 지배주주의 말 한마디가 우리 사회의 의제가 되고, 삼성과 관련한 수십만명의 생활양식까지 좌우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왜 '삼성공화국론'이 제기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의 창조경영이 앞으로 재계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기폭제가 될 지 아니면 삼성만의 캠페인에 그칠 지 지켜볼 일이다.
● 李회장, 오랜 준비끝 '창조경영' 제시
이건희 회장의 '창조경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회장의 창조경영은 일견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미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조지프 슘페터(1883~1950)의 창조적 파괴론을 떠올리게 한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기업가의 끊임없이 혁신을 부각시키면서 이를 창조적 파괴로 명명했다. 그는 또 이윤은 이러한 창조적 파괴를 성공적으로 이끈 기업가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오래전부터 창조경영을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97년 출판된 이 회장의 저서 '이건희 에세이'에선 창조경영을 시사하는 대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21세기는 단순히 상품만 만들어 파는 시대가 아니라 창의력과 아이디어, 정보를 모아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시대다', '이제 지식과 정보, 창조성 등 인간의 두뇌 자원이 경쟁력이다', '지금은 창조적 기술과 초경쟁 시대다', '앞으로는 창조력이 뛰어나고 자기 분야의 전문 지식이 월등한 골드칼라가 주역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80년대 삼성전자 부회장 시절 지시한 내용을 윤종용 부회장이 수첩에 모두 적어놓았는데 10년 뒤 이를 다시 보니 현실과 모두 딱 들어 맞았다는 일화도 있다"며 "창조경영은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이 회장의 심사숙고 끝에 나온 21세기 경영 철학"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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