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자격증 시험에 초등학생 어린이들이 몰리고 있다. 잠재된 소질을 계발해 일찌감치 장래 진로를 탐색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생까지 무분별한 ‘자격증 따기 열풍’에 휩쓸리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배진주(11ㆍ서울 배봉초등학교 4ㆍ사진)양은 24일 국내 최연소 미용사가 됐다. 미용사자격증 시험을 준비한 지 1년여 만이다.
어머니 권태희(36)씨는 어렸을 적 진주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미용실을 운영했던 권씨는 “진주가 7세 때던가요. 미용가위를 하나 달라고 하더니 제 흉내를 내더군요. 마네킹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하고, 자르기도 하는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지….”
그래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한 미용기술이 하나씩 늘었다. 커트와 와인딩은 제법 능숙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르더라구요. 일주일에 5번씩 열심히 다니는 것을 보고 대견했지만 이렇게 빨리 자격증을 딸지는 몰랐어요.”
배양은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난 뒤 새로운 자신감이 생겼다. 배양은 “훌륭한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내 꿈에 한발 더 다가선 것 같아요”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노유정(12ㆍ진주 천전초등학교 5)양은 ‘꼬마 대장금’으로 불린다. 노양은 지난해 양식ㆍ일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올 4월에는 복어조리기능사자격증에 최연소 합격했다. “시험을 앞두고는 학교수업을 마치고 요리공부를 하느라 새벽 5시에 잠든 적도 있지만 세계적인 요리전문 교수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한다”고 어엿하게 말하는 노양은 다음 달 중식조리기능사에 도전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어린이가 특정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거나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격증이 이러한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 요리교실’을 열고 있는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의 김용한 팀장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것저것 해 보기 마련인 유소년기에 자격증은 소질을 계발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격증은 아이들의 성취욕과 자신감을 고양시키기도 한다. 한국종이접기협회 계양지부 김선경(40ㆍ여) 교사는 “아이들은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집중력을 기르는 것은 물론, 자격증 급수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계속 동기가 유발된다”며 “자격증을 학교를 통해 수여하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자격증을 따고 이 협회에 등록하는 회원 수는 매달 1,600여명에 달한다.
반면 우려도 적지 않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각종 자격시험이 남발되면서 어린이들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펠트(PELT) 토익브리지 등 초등학생이 볼 수 있는 영어능력시험 응시자수는 연간 70만명이 넘는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 시험장의 40%는 초등학생으로 채워진다. 연간 초등학생 50만명이 응시하고 있는 한자급수시험을 주관하는 곳만 6, 7곳에 이른다.
서울시교육청 초등교육과 박영순 장학사는 “왜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지에 대해 부모가 먼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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