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23일 전격 귀국함에 따라 그가 제창한 '창조경영'이 앞으로 어떻게 실현될 지에 그룹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학계와 재계 일각에선 이와 관련, 관리 중심의 삼성 조직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영호 아주대 경영대학원장은 "'창조 경영'은 더 이상 다른 기업들의 것을 빌릴 수 없고, 순전히 혼자 힘으로 새롭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삼성의 절박함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이어 "특히 10년 후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위기감이 '창조 경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조 원장은 "창조 경영을 위해선 본격적으로 시선을 사람에게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말 창의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야만 하고, 이들이 창조적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조직과 관리 시스템도 창조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물론 오래 전부터 관리 중심의 조직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삼성에겐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지능지수(IQ)가 높은 인재들만 찾을 게 아니라 어떤 한 분야라도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인재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과제다.
조 원장은 "외국에선 '넌 참 수학을 잘하는구나'라며 기운을 북돋워줘 다른 과목들도 잘할 수 있도록 해 주는데 우리나라에선 잘 하는 건 얘기하지 않고 '넌 국어가 문제다'며 못하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기를 죽인다"며 "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다 잘 할 수는 없는데 관리 중심의 조직 문화에선 이를 강요하기 쉽다"고 말했다.
임원들이 창조적 인재를 뽑고 이들을 육성하겠다고 소리 높여 선언하면서도 막상 현장에선 이를 실천하지 않는 경우들도 없지 않다.
전용욱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장은 "창조 경영에선 삼성의 자신감과 위기감이라는 2가지 요소를 함께 찾아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창조 경영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며 "창조 경영은 전혀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존 것에서 하나의 변화를 일으켜 고객들이 전혀 다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창조 경영'은 현재의 조합을 새롭게 하는 것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 혁신적 기술로 하루아침에 대박이 떨어지길 기다리기 보다 기존 상품과 서비스에서 버릴 것과 더할 것, 줄일 것과 늘릴 것을 정해 다시 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 원장은 이어 "삼성의 조직 문화는 호흡이 가쁘고 긴장감이 강한 점이 특징"이라며 "창조성과 다양성을 수용하기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은 조직 문화"라고 지적했다. 이젠 획일성을 강요하는 조직 문화는 일부 포기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재계 일각에선 국가적으로도 창조적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회에서 먼저 창조적 역량을 가진 인재들을 배출해 기업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암기 위주의 주입식 입시 교육과 일부 교사들의 전근대적인 자질부터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창조경영 벤치마킹 셰이크 모하메드
이건희 회장은 지난 8일 아랍에미레이트(UAE)의 두바이에서 한창 건설중인 세계 최고층(160층규모) 빌딩인 버즈 두바이 공사 현장을 찾았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시공중인 이곳을 방문한 이 회장은 "셰이크 모하메드(Sheikh Mohammad) 같은 창조 경영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누구길래 이 회장은 그를 창조 경영의 벤치마킹 사례로 든 것일까.
셰이크 모하메드는 UAE의 부통령이자 수상이며, UAE의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두바이의 지도자다. 1949년 두바이의 전 지도자인 셰이크 라시드의 네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90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1월 맏형인 셰이크 막툼마저 세상을 떠나자 사실상 두바이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는 불모지 사막과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두바이를 탁월한 상상력과 창조 경영으로 기적의 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다. 우선 두바이의 석유 매장량이 얼마 못 가 고갈될 것으로 보고 세계의 기업들을 유인하기 위해 용적률과 층고 제한을 과감하게 철폐했다.
불가능은 없다는 전제 아래 사막 한 복판에 초호화 골프장과 실내 스키장을 만들기도 했다. 세계 유일의 7성(星) 호텔인 '버즈 알 아랍'을 세워 세계의 부호를 끌어들이고 있고, '팜 아일랜드'라는 야자수를 닮은 대형 인공 섬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버즈 두바이'와 해저 호텔 '하이드로폴리스'도 창조 경영의 산물이다. 두바이엔 소득세와 법인세도 없다. 국가 재정은 나라가 소유한 항공사와 정유사, 부동산 개발 회사가 비즈니스를 통해서 조달한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미래를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의 노예 상태로 머무르게 될 것"이라며 "기업에게 좋은 것이 두바이에게 좋은 것이며 두바이에서는 실패를 제외한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외치고 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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