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저기 나뒹구는 초라한 낙엽이 아니야. 울긋불긋 화려하게 불타는 단풍이지.”
24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렉싱턴호텔에서는 노동부 주최로 <워킹60> 캠페인 발대식이 열렸다. 취업에 성공한 고령근로자들이 “우리는 해 냈다”는 선언을 하고 일자리가 없는 노인들을 취직시켜 달라고 호소하는 자리였다. 워킹60>
발대식 직전 여의도공원 팔각정에는 고령근로자 10명을 비롯한 시민 20여명이 고령자 고용확대를 촉구하는 손도장을 찍었다.
손바닥에 빨간 물감을 듬뿍 묻힌 최정식(60ㆍ가명)씨가 “나이든 사람들을 말라 비틀어진 낙엽에 비유하는 것부터 잘못됐다”며 힘껏 손도장을 찍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백번 맞는 말”이라며 박수를 치자 손바닥에 묻어 있던 물감들이 옆 사람 코며 뺨 등으로 튀기 시작했다. 행사장은 이내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워킹60+ 캠페인은 성실하고 경험이 풍부한 고령근로자의 장점을 널리 알려 고령화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노인 일자리 부족 현상을 적극적으로 풀어보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노동부는 워킹60+ 캠페인의 주제를 ‘W세대 취업 지원’으로 잡았다. W세대란 ‘W’라는 글자처럼 삶의 부침을 다양하게 경험한 현명한(wise) 세대를 말한다.
한바탕 물감 소동을 일으킨 최씨는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었다. 지금까지 5곳의 회사를 전전했다. 취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나이였다. 능력은 나중 문제였다. 현재 중소기업에 다니는 그는 “막내가 고1이라 노후 비전은 꿈도 못 꾼다”며 “주머니 가벼워 어깨 잔뜩 처진 아버지 모습 안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젊은이 못 지 않은 열정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빌딩 관리소장을 하는 진철진(58ㆍ가명)씨도 “그 놈의 나이가 문제”였다. 3년 전 회사를 은퇴해 1년을 쉰 뒤 직장 구하기에 나섰으나 구인업체에 전화할 때마다 “사람 찼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면접장에라도 가야 사장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화 목소리를 젊은이처럼 해보기도 했지만 몇 초도 안 돼 들통났다. 구직 1년 만에 어렵사리 직장을 얻은 진씨는 “요즘 노인 일자리 얻기는 거의 전쟁”이라고 말했다.
“내가 무슨 고령자냐”며 활짝 웃은 김경희(50ㆍ여ㆍ가명)씨는 노무법인 사무직이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대신해 2003년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무식한 방법”으로 취업 관문을 뚫었다. “나이 따지다 보니 도대체 할 게 없었죠. 그래서 나이 제한 상관없이 아무데나 다 이력서를 냈죠.” 2개월 동안 400통이 넘는 이력서를 냈지만 면접을 허용한 곳은 고작 3개 업체. 2년 전 초봉 60만원 헐값에 취직을 한 그는 지금 월120만원에 보너스 200%를 받는 정규직 사원이다. 그는 “눈높이를 낮춰 직장을 잡은 뒤에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전행사 후 열린 발대식 본행사에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과 고령근로자, 노동계 재계 인사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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