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위기가 조금 진정된 듯 하다. 미국과 중국이 해법으로 타협한 안보리 제재결의를 들고 바삐 오간 끝에 추가 핵실험을 유보할 듯한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이 전해졌다. '미국이 괴롭히지 않는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었다고 하고, 듣는 이에 따라 풀이도 제 각각이지만 북한으로서는 합리적 수순이라고 볼 만하다.
물론 이와 관계없이 미국은 북한을 몰아붙일 준비를 하고 있다. 북한도 수 틀리면 사생결단할 태세이기에 언제든 위기가 고조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양쪽 모두 명분과 기력을 쌓는 모습이다. 따라서 이쯤에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고, 뭘 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는 게 좋겠다.
● 국가적 목표 외면한 핵 위기 논란
상황이 여기에 이르도록 우리사회는 저마다 응징과 대화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다투느라 진을 뺐지만 대세에 얼마나 영향 주었을까 싶다. 국가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모호한 상태로 둔 채 어디에 장단 맞춰야 옳은가를 놓고 멱살잡이하는 데 매달린 느낌이다. 우국충정에 겨워 거리에까지 나선 이들에게는 실례일지 모르나, 사태를 관망하며 제 자리를 지킨 이들이 훨씬 지각 있어 보인다.
국가 목표를 올바로 가늠하려면 핵 게임의 직접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전략적 목표부터 살펴야 한다. 북한의 목표는 국가 생존과 체제 보전으로 쉽게 정리할 수 있다.
침략본능에서 나온 망동,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자해행위 따위로 규정하는 유사 정신의학적 진단은 욕설로는 몰라도 명색이 국가인 북한의 의도를 헤아리는 데는 별로 쓸모없다.
미국의 전략목표를 제대로 살피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사회가 원래 여기에 소홀한데다 그나마 언급하는 전문가들도 미국의 목표는 핵 확산을 막고 동북아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는 뻔한 논리를 되뇌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미국이 그 못지않게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동맹 한국과도 갈등을 빚는 근본을 깨닫기 어렵다.
이런 혼돈 속에서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핵무기 생산을 막고 핵 포기를 압박하는 수준을 넘어 생존 자체를 어렵게 만들 의도라는 얘기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원래 북한의 행동과 관계없이 대화와 타협에는 뜻이 없다. 그렇다고 체제 붕괴를 노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를 통해 전략적 완충방벽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 중국을 어렵게 하고, 한국을 동맹관계의 틀에 묶어두는 효과를 노린다는 지적이다.
이런 분석은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집착하는 연유를 이해하는데 도움된다. 조잡한 핵 능력을 겨우 갖춘 북한의 처지에 걸맞지 않는 핵 수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중국과 한국을 압박하는 목적은 북한 봉쇄보다 두 나라의 전략적 행보를 견제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과 패권경쟁을 피한 채 경제성장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 목표인 중국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고, 남북 협력을 통한 통일기반 조성이 목표인 한국은 선택이 어려운 갈림길에 섰다.
반면 미국은 핵 위기 속에 한미 군사동맹과 자유경제체제 유대를 강화하고 반미주의를 억제한다는 한반도 전략목표에 성큼 다가선 형국이다.
● 냉전대치 회귀는 역사흐름에 역행
햇볕이든 포용이든 대북 교류에 불만인 이들은 이런 대세 전환을 반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북한이 곧 붕괴할 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얻을 것은 반세기 넘게 익숙한 냉전적 대치, 불안한 풍요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막대한 부담이 따를 북한 붕괴와 통일 가능성에 일찍이 손사래 친 이들은 겉으로 안보 불안을 떠드는 것과 달리 과거로 회귀하는 것을 다행스럽고 편안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역사 흐름에 역행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될 리 없다. 핵 위기는 변화 물꼬를 틀어막으려는 북한과 미국의 마지막 대결로 볼만 하다. 핵 문제를 넘어 북한을 어찌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왔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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