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신고, 도시락 메고 아스라한 추억 속으로…임정빈 지음 / 랜덤하우스 발행ㆍ1만2,000원
변해도 너무 변했다. 도로 건물 자동차처럼 눈에 띄는 것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선, 세상을 사는 법, 사람 관계까지 모두 바뀌었다. 그래도 이제 먹고 살만해 졌으니 이 변화를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쉽다. 기억에는 아직 또렷이 남아있으나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스라한 풍경들. <검정고무신에서 유비쿼터스까지> 가 포착한 장면들이다. 대략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시기의 의식주와 학교 생활, 살림, 돈벌이, 집안일 등을 담고 있으니 작은 생활사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가정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한양대 명예교수로 있다. 검정고무신에서>
돌아보면, 가난했어도 꿈과 낭만과 따뜻함을 잃지 않고 고단함을 극복해온 시대였다. 먹을 것이 부족해 배가 고팠지만 겨울철에는 늦게 오는 가족을 위해 그릇에 따뜻한 밥을 담아 안방 아랫목 요 밑에 두었다. 겨울철 학교에서는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 데웠는데 맨 밑의 도시락은 눌어서 누룽지가 되기도 했다.
도시락에 보리가 30% 이상 들어있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이 났고, 식량을 축낸다는 이유로 쥐를 잡아 꼬리를 가져오게 했으니 학교의 풍경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도 소풍은 신 나는 일이었다. 엄마는 김밥과 삶은 계란, 사과 1개, 사이다 1병을 싸주었는데 캐러멜, 알사탕, 껌, 오징어까지 가져온 아이들을 보면 부러워졌다.
집에 욕실이 없어서 엄마 따라 공중 목욕탕에 갔다가 같은 반 여자 아이를 만나 망신당한 남자 아이도 있었다. 여자의 일상은 지금보다 훨씬 고단했다. 조리 청소 빨래 장보기 설거지 다리미질 등 끝이 없었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쉬는 날에도 “신문 가져와라” “재떨이 가져와라”며 잔심부름을 시켰다. 그때를 회상하면 떠오르는 또 한 사람, 만원 버스 차장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문을 연 채 출발하고 그 때마다 차장은 버스에 매달리는 아슬아슬한 일을 반복했다.
가난했던 그 시절,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살았고 가정은 생존 공동체였다. 깊이나 치밀한 분석은 없지만, 우리의 생활문화를 되돌아보는 추억 여행기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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