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의 두 축인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이 잇따라 ‘우리당 창당 실패론’을 제기하고 나서 여권의 정계개편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창당의 대표적 주역이자, 당내 최대주주들인 두 사람이 정계개편 필요성을 시사하는 언급을 함으로써 여권의 신당 창당 논의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주장에 친노(親盧)그룹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정계개편 방향을 둘러싼 갈등과 충돌도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의장은 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천년민주당의 분당이 여당 비극의 씨앗이 됐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언급과 관련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ㆍ노무현 두 대통령을 당선시킨 지지자들은 우리의 정치적 기반이자 참여정부의 주동세력이 돼야 하는데 그분들에게 실망을 드렸다”고 부연했다. 분당이 잘못됐고, 우리당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이에 앞서 정 전 의장은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며 “결과적으로 민주세력의 분열이 초래된 데 책임감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분당이 잘못됐다’는 메시지를 담은 두 사람의 고백은 모두 정계개편 방향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의 지지율 회복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대비하려면 ‘헤쳐모여식 통합 신당’ 방식의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당내 친노그룹은 “창당 주역들이 자기 부정을 해서 되느냐”며 두 사람을 비판했다. 개혁당 출신이 주축인 참여정치실천연대 대표인 김형주 의원은 23일 “분당의 책임은 보스정치, 지역정치에 매몰된 민주당 말기의 부패와 한계에도 있다”며 “우리당이 창당 정신에 맞게 해오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 분당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당내 분위기는 첨예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당 중심의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는 친노그룹과 통합 신당을 추진하는 김 의장 및 정 전 의장측의 구상이 정면 충돌할 수도 있다. 또 김 의장과 정 전의장측의 정계개편 주도권 경쟁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대주주의 새판짜기 구상이 비슷해 우리당과 민주당, 고건 세력 등 범여권 세력이 헤쳐모여식으로 통합 신당을 추진하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신당에 참여할 지 여부가 핵심적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 거취 문제가 어떻게 가닥 잡히느냐에 따라 친노그룹의 통합신당 합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