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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중증환자에게 작은 배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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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중증환자에게 작은 배려를

입력
2006.10.24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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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버지니아주에 사는 40대 초반의 베트남계 미국인 여성 바이씨는 지난해 말부터 폐암과 투병 중이다. 유급 병가 기간은 벌써 끝났지만 그녀에게는 페이체크(월급)가 매달 우송된다.

직장 동료들의 온정 덕분이다. 바이의 아픔을 들은 동료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연가를 바이를 위해 쓰기로 했다. 한 친구는 아직 못쓴 1주일치를, 다른 동료들은 코 앞의 휴가 계획을 깨고 하루치, 이틀치를 내놓았다.

회사도 직원들이 희사한 휴가일수만큼 바이의 유급휴가를 연장하는 '연가 기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바이의 남편 폴에게는 재택근무를 하도록 배려했다. 바이의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상담 선생님은 그녀가 혹시 엄마의 병 때문에 정서장애를 겪지 않을까 늘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대장암을 이겨낸 A씨는 워싱턴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미국인과 동포 지인들로부터 받은 카드와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자신의 발병 소식을 들었을 지인들로부터 한 통의 전화도 없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별별 생각을 하면서 며칠이 지나자 엽서와 편지, 책 같은 작은 선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결같이 그를 격려하거나 암과 싸워 이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들이 전화나 방문 대신 카드로 위로의 뜻을 전한 까닭은 뒤늦게 알게 되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러 사람의 전화를 받을 경우 환자나 그 가족의 입장에선 같은 대답을 되풀이 해야 하고, 시도 때도 없는 전화가 환자의 휴식을 빼앗을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한 작은 배려였다. A씨는 카드와 엽서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힘들고 지칠 때면 큰 위안을 받기도 했다.

#불법체류 신분으로 중병을 얻은 40대 중반의 '미시즈 김'이 올해 여름 생을 마칠 때 자리를 지킨 사람은 동포 자원봉사자였다. 그녀는 병상에서 의식을 잃기 전 자신의 고된 투병을 지켜봐 준 미시즈 리의 손을 잡고 눈물로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그녀를 끌다시피 병원으로 데려가고, 아들과 딸을 위해 그녀의 집 텅 빈 냉장고를 채워 놓은 사람은 일면식도 없었던 미시즈 리였다.

비용 문제로 치료의 후순위에 밀려난 그녀를 위해 의사를 조르는 자원봉사자를 대하면서 미국에 온 지 처음으로 세상의 따뜻함을 느꼈다고 그녀는 숨을 거두기 전 고백했었다.

며칠사이 미국에서 근무할 때 알게 된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주변을 되돌아 본다. 요즘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관리공단은 암 등 중증질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일면 맞는 말이다.

중증환자에 대한 건보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은 그만큼 줄었다. 그러나 공적 보장이 닿지 않는 그늘은 아직도 넓다.

5,000원 하는 붕대값은 90%의 혜택이 돌아가지만 일회 당 수백 만원짜리 항암제에 대한 혜택은 한 푼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현실을 외면하면서 건보 적용 확대 비율만 강조하는 것은 기만이다.

국가재정상 공적 보장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사회적 온정과 배려가 중증환자의 삶에 스밀 여지는 더 커보인다.

동료들의 연가 기부와 격려의 편지,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손길이야말로 중증환자에게 공적 제도가 보장하지 못하는, 희망의 명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 친구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어려움 속에서 뇌졸증으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모시는 그 친구에게.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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