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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진보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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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진보의 위기

입력
2006.10.24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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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세계시간과의 엇박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국전쟁 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극우반공체제하에서 진보의 불모지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세계가 진보의 위기 속에 보수화의 물결을 타던 1980년대 들어 80년 광주학살 덕분으로 뒤늦게 진보의 르네상스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꽃이 채 피기 전에 소련동구의 몰락을 경험했다. 이후 생겨난 것이 주기적으로 제기되는 진보의 위기론이다. 소련 동구 몰락 때만 해도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전향을 선언하고 나왔다.

그러나 급진적 지식인중심의 관념적 진보운동과는 달리 대중운동인 노동운동의 경우 위기론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해 왔다. 구체적으로, 소련 동구 몰락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생겨났다. 또 1996년 말에는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통해 김영삼 정부의 항복을 받아 내는 등 꾸준히 그 힘을 키워 오고 있다.

● 노무현의 실패 덤터기 쓰고

최근 진보운동이 또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서너 가지가 중첩된 결과이다. 우선 이 칼럼에 썼던 '한심한 민주노총'(2005년 11월 15일자)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잇따른 노동운동의 부패 스캔들이 보여주는 진보운동의 도덕적 위기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역시 진보운동의 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등이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이고 노무현 정부는 진보세력이 아니라 자유주의세력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정부는 한나라당과 같은 냉전적 보수세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보세력도 아닌, 개혁적 보수세력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같은 구별을 하지 않고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진보세력의 실패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로 진보세력도 덤터기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 같은 국면에서 설상가상으로 터진 것이 바로 북한의 핵 문제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이라는 변수가 남한의 진보세력에서 최대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물론 그 역사적 이유는 이해가 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북한은 진보, 보수를 떠나 실패한 국가이다. 자유를 포기했다고 평등을 이룬 것도 아니고 국민들의 최소한의 생존조차도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아니 북한은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긴 말이 필요 없이, 이 세상에 정권을 세습하는 진보정권도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일부 친북적인 정파를 제외하고 많은 남한의 진보세력들은 북한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추구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북한과 남한의 진보세력은 "그 놈이 그 놈"으로 보이는 것 같다.

이 점에서 남한의 진보세력의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한나라당과 냉전세력, 그리고 국가보안법도 아니고 북한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실험까지 하고 나섰으니 할 말이 없다.

● 일부 정파는 북핵 대응에 오류

진보의 위기를 더욱 부추기는 것은 진보세력 내 일부 정파의 잘못된 대응이다. 진보세력 중 자주노선을 강조하는 한 정파가 북한의 핵개발을 자위권적 행동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과로 민주노동당의 중앙위원회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특별결의문을 채택하려다가 결렬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북한의 핵실험에 명백히 반대의사를 밝히자는 다른 정파(평등파)의 주장에 대해 자주파가 반대를 하자 평등파가 퇴장해 버린 것이다.

물론 부시 정부의 외골수 강경론이 북한의 핵개발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핵무기 개발을 자위권적 행동이라고 정당화하는 진보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원칙으로 보나 전술적으로 보나,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진보의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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