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우리나라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는 분석이 많은데, 한국 경제상황을 반영하는 원화의 가치는 어떻게 유례없는 강세를 유지하는 걸까.”
이런 의문에 대해 올들어 급증하고 있는 단기외채가 그 근본원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금융부채로 사용하기 위해 들여온 외화는 국내 대출을 위해 원화로 환전될 때, 원화 수요를 늘려 단기적으론 원화강세의 원인이 된다.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은 16일 발간한 ‘아시아 국가들의 실효환율 평가’ 보고서에서 올해 원화가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장기(1999년1월~2006년6월) 평균수준을 20% 가량이나 웃돈다고 분석했다. 실효환율은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대비 원화 가치를 상대국들과의 무역가중치를 감안해 계산한 환율이다.
즉 우리나라 주요 교역상대국의 통화에 비해 원화의 상대가치가 높다는 것으로, 이는 수출 경쟁력은 하락하고 수입 규모는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원화와 달리 대부분 아시아 통화들은 최근 달러약세에도 불구하고 실효환율이 과거평균도 밑도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 엔화와 홍콩 달러화는 20% 가량 가치가 하락했다. 중국 위안화도 다른 교역상대국 통화보다 저평가 상태를 유지하는 걸로 조사됐다.
BIS의 분석은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 4월을 기준으로 발표한 한국의 실질 실효환율 123.7(2000년 1월=100)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일본은 73.9, 멕시코는 98.3을 기록했다.
이처럼 원화 가치만 이상스럽게 고평가되고 있는 이유는 한마디로 급증한 단기외채가 원화가치 하락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8월까지 경상수지 13억 달러 적자, 외국인 직접투자 13억 달러 적자, 증권투자는 무려 21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등 거액의 외화가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으나, 해외 차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타수지에서는 무려 373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고평가된 원화 가치를 지탱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연구위원은 “올들어 엔화차입 등으로 단기외채가 상반기에만 무려 200억 달러 이상 늘어나면서,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전체 외채 중 단기외채 비중이 40%를 넘어섰다”며 “이 같은 단기외채 급증이 원화 이상 고평가를 유지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외환 담당자들은 “수년간 수출실적이 대기업에만 편중된 가운데, 대기업이 아직 외환관리 능력을 키우지 못한 것도 원화 이상 강세의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한국의 수출이 조선ㆍ중공업, 전자, 자동차 등에 편중되면서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가 단기간에 거액 단위로 원화로 환전되면서 원화가치가 실제 이상 강세를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년간 원ㆍ달러 환율이 절하 일변도의 방향성을 보이면서 대기업들은 환차손을 줄이기 서둘러 달러 선매도에 나서고, 여기에 일부 투기세력도 가세하면서 원화에 대한 가수요 규모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금융권 단기 엔화차입이 줄고 달러 강세 회복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실물경제를 반영하지 못하는 원화 과대평가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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