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이른바 ‘친서 작전’을 시도했지만 미국측이 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둘러싸고 난색을 보여 결국 실패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아사히(朝日)신문 칼럼니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62·사진)는 20일 북한 핵 사태를 둘러싼 외교비사를 다룬 책 <반도의 의문(the peninsula question)-한반도 제2차 핵 위기> (아사히신문사)를 발간했다. 4년에 걸친 취재 끝에 완성한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을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들의 대북 협상 뒷 얘기를 생생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정리했다. 반도의>
이 책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종석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미국에 보내 ‘친서 작전’을 타진했다. 친서 작전이란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군사공격을 안 한다는 것을 약속하는 대신 김정일 위원장은 핵 포기를 약속하는 상호 양보 전략이다. 만일 이것이 성공한다면 북한 플루토늄 핵 개발을 평화이용의 전제를 달아 국제관리 아래 두는 것을 검토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종석 사무차장의 제의에 대해 미국측은 처음 관심을 갖는 분위기였으며, 초안의 밑그림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친서에 사용할 김정일 위원장의 호칭을 놓고 미국측이 꺼림칙한 반응을 보여 결국 실패했다. 빌 클린턴 정권 시절엔 ‘김정일 각하,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최고지도자’라고 썼는데, “그 놈(김정일 위원장)은 정말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부시 대통령에게 이런 식의 호칭을 권할 참모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종석 사무차장은 백악관의 일부 사람과 협의했으나, 이 제안이 상층부까지 도달하지 못해 결국 ‘결정 보류’가 됐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2003년 1월 임동원 특사의 일행으로 방북했던 이종석씨는 마지막 날 김용순 조선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와 단독 면담을 갖고 “핵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필요가 있으며, 남북간에 보다 폭 넓은 협력을 할 용의가 있다”는 당선자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노 당선자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언급한 것을 지적하며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를 비판했다”고 반발했다.
앞서 2002년 2월 서울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의 전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며 “단지 북한 핵 시설에의 외과 수술적인 공격을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그렇게 되면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해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북한을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면전쟁으로 발전한다”며 부시 대통령을 설득했다고 이 책은 주장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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