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예술을 읽다 / 이정우 등 지음 / 철학아카데미 발행ㆍ18,000원
사회가 상위와 하위 계급으로 뚜렷이 분할돼 있던 때, 예술은 고급 대 저급이라는 기준으로 선명히 나뉘어져 있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갈파한 바, “특정 계급을 사회적으로 다른 계급과 구별 짓는 장치나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예술관”이라는 말에는 그 같은 계급적 의식이 예술이라는 렌즈를 거쳐 어떻게 변했는지가 나타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퇴물 취급을 받기 딱 좋다. 철학아카데미가 이정우 대표, 강태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 등 16명의 논객들을 모아 펴낸 이 책은 똥마저도 ‘미술가의 똥’이라면 고가에 판매되는 이 수상한 시대의 예술을 꿰뚫어 보는 철학적 비방이다. 현대 미학을 장르별로 집성한 셈이다.
현대 예술의 미학적 원리, 일상과 예술의 구분을 말소하는 대중문화의 힘, 예술과 매체의 관계 등 현대 미학의 논점들이 전반부를 장식한다. 후반부는 각론에 해당한다. 미술, 음악, 무용, 문학, 건축, 사진 등은 어떻게 전통 혹은 통념을 거슬러 이 시대와 몸을 섞을까?
책은 영화를 가리켜 ‘대중성을 넘어선 사유의 충격’이라 규정한다. 대중의 소일거리로서의 영화, 유효한 철학적 매체로서의 영화 등 두 상반된 시선을 포섭해 철학적 견해를 정리한다. 그렇다면 미디어까지 포함한 오늘날의 공간에서 몸과 숨이 현존하는 방식이란 어떤 장르를 가리키는 것일까? 갖가지 매체와 가상 현실의 살인적 협공에도 꿋꿋이 자신의 존재를 지켜가는 예술 양식, 연극이다.
죽음은 무소불위다. 그 죽음이 삶에 드리우는 무의미함을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것은 감각적인 폭발을 일삼는 예술뿐임을 책은 역설한다. 견고한 철학적 언어 활동이 예술 혹은 감각의 힘으로 어떻게 부드러워지는 지를 지켜보는 즐거움을 책은 제공한다.
각 단원이 끝날 때마다, ‘더 생각해 볼 문제’와 ‘더 읽어볼 책’ 등 공부거리를 요령 있게 정리했다. 현대 예술의 미학적 쟁점들까지 덤으로 파악하는 셈이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