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릿줄 글ㆍ안은진 노석미 이주윤 정지윤 그림 / 샘터 발행ㆍ8,000원
의문이 든다. 과연 우리는 모두 똑같아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인지. 반만 년 역사 동안 지켜왔다는 피의 순결성이 현재를 사는 이들의 행복보다 중요한 일인지.
책은 혼혈아 5명의 이야기다. 까만 피부색을 가진 재현이는 제 모습을 살구색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수모를 당한다. 이름이 아닌 ‘튀기’‘잡종’으로 불리는 경민이의 마음 속은 전쟁이 터진 것만 같다. ‘조센징’이란 놀림이 싫어 한국에 온 달이 역시 ‘쪽발이’란 또 다른 벽에 힘을 잃는다. 차라리 무슨 잘못이라도 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러나 아파할 수만은 없다. 혼혈 1세인 재현이의 아빠는 밤새워 달걀 껍질에 꼼꼼히 까만색을 칠한다. 그리고 재현이의 반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말한다. 껍질 색깔이 달라도 속은 똑같이 하얗다고. 필리핀인 엄마를 부끄러워하던 아랑이도 엄마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사랑해”를 “사르해”라고 말하는 엄마. 그 마음에 미소가 번지는 듯하다.
과거 우리 사회는 혼혈아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젠 ‘코시안’으로 불리는 피할 수 없는 세대가 자라고 있다. 혼혈이든 외국인이든, 따뜻한 유년을 보내고 평범한 이웃으로 커나갈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결벽증에 사로잡힌 편견으로 이들을 밀어내는 건 온당치 않다.
“내 나라, 내 조국은 겉모습이 다르다고 우릴 몰라볼지 모르지만, 우린 절대 내 나라 대한민국을 몰라보지 않아요.” 귀 기울여 들으면 마음은 이미 하나다.
박선영 기자 philo9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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