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게서 '핵실험'을 취임선물로 받은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지금 경기하듯 대북 제재의 선봉역을 자임하고 있다. 북한 핵이 절박한 현실적 위험으로 다가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상대적으로 북핵을 다루는 우리 내부의 지리멸렬한 모습이 더욱 부각돼 씁스레하다.
안보문제에 대처하는 두 나라의 태도와 접근 차이는 경제 쪽에서도 발견된다. 양상 역시 한쪽은 시장과의 소통, 다른 쪽은 시장과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아베 총리는 9월 말 취임 후 첫 국회연설에서 기술혁신을 지렛대로 삼는 장기 성장전략을 제시하며 이를 '이노베이션 2025'라고 명명했다. 개혁과 성장을 강조한 고이즈미 전 총리의 노선을 추종하며 내세운 '성장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공약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이노베이션 담당각료까지 두고 2025년까지 기술변화를 예측, 의약ㆍ공학ㆍ정보기술(IT) 등 분야별로 중점투자 대상 기술을 내년 2월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재계가 손 맞잡은 일본 경제
아베 총리는 또 첫 조각(組閣) 작품이 '개혁성 없는 보수 일색의 논공행상 인사'라는 비판을 받자 경제재정자문회의의 민간 몫 인선에서 시장의 요구를 반영했다.
일본 게이단렌(經團聯) 회장인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과 니와 우이치로 이토추상사 회장 등 개방ㆍ개혁 성향의 4명을 영입한 것이다.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예산편성과 재정운영의 기본방침을 결정하는 민ㆍ관 합동조직으로 2001년부터 가동돼왔다.
캐논을 세계적 하이테크 기업으로 키워낸 미타라이 회장은 '이노베이트 재팬' 구상으로 유명하며, 니와 회장 역시 관료주의의 폐해를 줄곧 공격해온 시장개혁론자다.
2명의 학계 인사도 개방과 규제개혁을 통한 일본경제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제고를 이끌어왔다. 고이즈미 내각이 관료사회의 저항을 뚫고 우정 민영화 등 정부혁신을 밀어붙일 수 있게 했던 민간의 대표선수들이다.
일본 정부가 민간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새로운 황금기'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 먹고 사는 문제에 무지한 정치세력들이 시장을 통제의 대상을 삼아 소모적 이념적 논란을 양산해온 한국 경제의 앞날은 회색 빛 일색이다.
정부와 재계의 반목과 불신이 깊어 가는 사이에 자본과 노동의 생산성은 10년 새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산업간 기업간 양극화가 확산되면서 기업생태계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기업보국의 진취적 자세는 보신주의로 대체됐다.
얼마 전 정부는 '기업환경개선 특별대책'을 내놓으며 "최근 우리경제는 창업ㆍ공장설립ㆍ외자유치 등의 측면에서 활력이 둔화되고 있다"며 "이는 고비용구조의 고착화, 인력부족, 규제강화 등의 요인으로 기업환경이 개선되지 못한데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규제개혁을 자랑해온 참여정부 들어서도 규제총량이 2003년 7,853건에서 올해 8,083건으로 오히려 늘었다는 통계도 인용했다.
고비용과 규제는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는 기업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다. '메가트렌드' 시리즈로 명성을 쌓은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은 "앞으로 세계는 국가단위에서 경제도메인(Economic Domain) 단위로 급속히 재편될 것"이라며 정부가 경제도메인의 주체인 기업의 발목을 잡거나 통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의 소비자들이 한국은 몰라도 삼성과 현대차의 브랜드를 높이 평가하는 지금, 정부의 역할은 자유로운 기업환경을 조성하며 경제도메인을 이끌 인재 양성과 교육에 힘을 쏟는 것이라는 얘기다.
● 기업이 주체인 강제도메인 시대
하지만 정부는 대부분의 국민이 듣고 보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성 비만증에 걸린 관료사회는 규제의 칼만 더욱 사납게 휘두를 뿐,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교육은 고만고만한 범재를 양산하는데 집중되고, 장기적 국가설계는 액션플랜을 결여한 시늉에 그친다. 정부와 민간부문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로 달려가는 일본 뒤에서 고작 경기부양 카드를 꺼낼까 말까 눈치를 살피는 게 우리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