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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를 보고/ 테크놀러지·예술의 결합, 결코 녹록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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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를 보고/ 테크놀러지·예술의 결합, 결코 녹록하지 않다

입력
2006.10.24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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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4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두 개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우리 시대의 테크놀러지와 예술의 접점에 대해 다룬다.

‘두 개의 현실’이 가리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의 양면성이다. 물론 여기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제기되는 일상적 현실과 가상적 현실의 모호한 구분에 대한 예술적 질문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의 복잡하고도 다중적인 속성에 대한 예술가들의 오랜 실존적 고민 또한 미디어아트에 그대로 이어진다.

전시는 크게 세 개 층의 공간으로 구분돼 있는데, 여기에는 각각 ‘두 개의 리얼리티’ ‘리얼리티의 확장’ ‘경쟁적 리얼리티’라는 소주제가 붙어 있다. 1층은 멀리 떨어진 곳의 현실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변지훈의 <바람> 이나 린 허쉬만의 작품처럼 현실과 가상의 모호한 경계를 다루는 작품들이, 2층에는 고헤이 아사노 등의 관객참여형 인터랙티브 작품 <뜰> 이나 오용석의 <드라마> 처럼 기술이 구현하는 가상현실을 관객과의 경험적 공유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작품들이, 3층에는 안구의 동작 추적을 이용한 악셀 로흐의 <모호한 시그널스케이프> 나 기억에 부여되는 형태를 재구성한 디에트마 오펜후버 등의 과 같은 가상성을 보다 적극적인 탐구적 주제로 끌어내려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정보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에서 이런 미디어아트 행사가 갖는 의의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기술을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파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문화적 도구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이 행사는 상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더 발전시켜야 할 여지를 많이 보여준다. 일본의 ICC나 오스트리아의 아르스 엘렉트로니카, 미국 산호세에서 열리는 ISEA와 같은 전시를 염두에 두고 보면, 여전히 상당수 전시작품들이 기술적 첨단성과 창의성의 접목 대신 잘 알려진 센서 기반의 작품이나 단채널 비디오 정도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예술성에 대한 해석상 차이의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미디어아트의 전문성에 기반한 심도 있는 자체 기획연구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이 행사가 서울시 예산으로 이뤄져서인지 비전을 지닌 기업의 기술적, 재정적 후원이나 참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미디어아트 전시는 기술적 지원에 있어 매우 높은 수준과 정교함을 요구한다.

불과 일주일 동안 모든 작품 설치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점 역시 이 첨단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주체가 지닌 딜레마를 잘 드러낸다. 전시 당일까지도 제대로 설치가 안되었거나 작동이 되지 않는 작품들도 많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특성상 일주일 이상 전시가 없으면 민원이 들어오는 불가피한 현실 때문이란다. 기술과 문화, 이를 한데 아우르기 어려운 두 개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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