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경영’을 설파하며 지구를 한 바퀴 돈 이건희 삼성 회장이 23일 전격 귀국했다. 1993년 68일간의 임원 해외 간담회에서 “처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한 지 13년 만의 월드 투어였다. 이 회장은 이번 40일 간의 해외 출장에서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상품과 기술로 시장을 창출하라”며 새 경영 화두를 던졌다. 이 회장은 이 시점에서 왜 ‘창조 경영’이란 메시지를 제시했을까. 이 회장이 던진 ‘창조 경영’의 의미와 배경을 총 3회에 걸쳐 진단한다.
“20세기 경영과 21세기 경영은 다르다. 20세기에는 물건만 잘 만들면 1등이 됐지만 지금은 품질에 별 차이가 없다. 21세기엔 여기에 디자인 마케팅 연구개발(R&D)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 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달 18일 뉴욕에서 열린 삼성전자 사장단 회의에서 ‘창조경영’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선언이었다.
■ 세계를 리드하는 삼성
이 회장의 ‘창조경영’은 사실 이날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창조경영’의 원형은 올해 신년사다. 이 회장은 “삼성은 오랫동안 선진 기업을 뒤좇아 왔으나 지금은 쫓기는 입장에 서 있다”며 “이젠 앞선 자를 뒤따르던 쉬운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두에 서서 험난한 여정을 걸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6월 독립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도 “지금까진 글로벌 기업을 벤치마킹하며 성장해 올 수 있었으나 이젠 더 이상 다른 업체들을 따라가던 방식으론 성장할 수 없다”며 “앞으로는 선두그룹에서 신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창조적 경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회장의 이번 해외 출장은 ‘창조경영’의 의미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 삼성전자 사장단 회의가 “우수인력 채용과 육성, 과감한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며 창조경영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라면 두바이 방문은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비전으로 두바이를 전세계가 주목하는 도시 발전 모델로 변화시킨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정신을 배우라는 뜻이었다.
■ 인재 수혈과 R&D 투자는 확대
이 회장이 ‘창조경영’이란 화두를 꺼내게 된 것은 달라진 삼성의 위상과 주변환경의 변화에 기인한다. 이 회장은 93년 삼성 임직원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런던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 등을 돌며 ‘신경영’을 주창했다. 기존 ‘양’(量) 위주에서 ‘질’(質) 중심으로 사고 전환을 촉구한 뒤 불량률을 낮추고 선진 기업들의 장점을 따라 하자는 게 ‘신경영’의 골자였다.
그 결과 글로벌 리딩 기업의 위치에 서게 된 만큼 이젠 미지의 신세계를 새롭게 열어가기 위해 차별적인 상품과 시장ㆍ기술을 창출해야 한다는 게 ‘창조경영’의 요체다. 삼성만의 고유한 차별성과 독자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 미래 산업의 표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창조경영’이 지금까지 삼성 경영 철학의 근간이 됐던 ‘신경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창조경영’의 또 다른 배경에는 이 회장 특유의 위기 의식도 작용했다. 삼성 관계자는 “세계 기업의 흥망성쇠를 보면 과거 1류 기업이 2류, 3류로 전락하거나 아예 망해버린 것은 변화에 둔감하고 올바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회사가 커지고 이익이 조금 난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삼성이라고 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이 회장 귀국으로 창조경영 탄력
이건희 회장의 ‘창조경영’은 당분간 삼성 제2의 혁신을 선도하는 경영 철학으로 자리매김할 것이 확실시 된다. 일단 삼성의 우수 인재 확보와 R&D 투자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의 다른 관계자는 “창조 경영을 위해선 세계를 선도하는 독창적 아이디어와 디자인 능력을 갖춘 ‘S급 인재’가 필요하다”며 “특히 획기적인 제품과 기술을 위한 R&D 투자가 없다면 ‘창조경영’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삼성은 2003년 2,600여명 수준이던 박사급 인력을 지난해 3,800여명 수준으로 확대했고, R&D 투자도 같은 기간 4조4,000억원에서 6조5.000억원으로 50% 이상 늘렸다.
국내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이 회장의 ‘창조경영’은 재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3일 귀국한 이 회장이 ‘창조 경영’과 관련해 어떤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할 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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