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의 대명사인 경북 경주시,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등 역사도시들이 해가 갈수록 고교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고교 수학여행지가 제주와 중국, 일본 등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시는 가을 수학여행철임에도 고교생들의 단체관람 행렬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백명에서 1,000명이 동시에 묵을 수 있는 유스호스텔과 여관 35개가 밀집해 있는 불국사의 숙박업체들에 따르면 올해 경주시에는 30여개 고교만 수학여행을 왔다. 2001년까지 만해도 민박촌이 서울 경기 충청 강원 등의 100여개 고교 학생들로 붐볐던 것에 비하면 한산하기 그지 없다.
최근 몇 년간 이 민박촌의 5개 대형여관이 경영압박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았고 6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포시즌 유스호스텔 등 상당수 숙박업소가 고교생 대신 초등학생을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또 불국사 민박촌에 여장을 풀더라도 학생들이 과거처럼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안압지 반월성 황룡사터 등 경주시 일대만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기차로 경주에 도착한 학생들은 숙박업소가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경북 포항시의 포스코와 울산의 현대중공업, 경남 양산시 통도사, 부산 광안리까지 영남권 전역을 누비고 있다.
불국사숙박협회 윤선길(49) 회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경주시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준 데다 수학여행단도 초등학생 중심으로 바뀌었다”며 “주5일 근무제 등 영향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역사도시에 대한 관심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백제의 고도인 공주시와 부여군도 수학여행 학생들이 감소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공주시 사적관리소에 따르면 수학여행 성수기인 요즘 무령왕릉과 공산성 등 백제유적을 찾는 관람객수는 1개월에 5만여명 내외. 이중 80~90%를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으나 고교생은 드물다.
초등학생 500명을 수용하고 있는 부여청소년수련관에도 고교생 수학여행단은 들어오지 않는다. 이 수련관 김영구(46) 관리과장은 “고교생은 아예 제주나 해외로 수행여행을 떠나고 있다”며 “초등학생도 교과과정에 따라 4, 5학년은 백제문화권, 6학년은 신라문화권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서울지역 고교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수학여행지는 제주였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전체 295개 고교 중 수학여행 행선지가 제주인 곳이 133개교로 가장 많았고, 중국과 일본 등 해외가 44개교로 다음이었다. 경주권은 35개교, 설악산 일대는 22개교, 남도권(경남, 전남)은 5개교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역사도시 숙박업소들의 수학여행단 유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다. 공주시 사적관리소측은 매년 전국 500개 초중고교에 수학여행 유치 홍보책자를 배포하고 있다. 교육팀과 문화유산해설사까지 동원해 수학여행 일정 전반을 관리해 주고 있는 경주시 일대 숙박업소도 수도권 일선 학교를 직접 누비며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울산에서는 7월 수학여행이나 수련활동에서 숙박업소로부터 뇌물을 받은 4개 학교 교사 10명과 공짜로 숙박한 27개 교사 270여명이 무더기로 적발돼 인사조치됐다.
서울시교육청 학교체육보건과 백해룡 장학사는 “고교생의 수학여행 패턴이 기성세대의 관광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초중학생 때 이미 경주 공주 설악산 등을 많이 다녀온 이유가 큰 것 같다”며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수학여행지가 결정되므로 교육적인 프로그램 마련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허택회 기자 thheo@hk.co.kr경주=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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