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역사의 화해는 가능한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역사의 화해는 가능한가

입력
2006.10.24 05:52
0 0

역사 앙금 푸는 길은 정치적 결단뿐아라이 신이치 지음ㆍ김태웅 옮김 / 미래M&B 발행ㆍ1만3,000원

9일 오전 아베 신조(安倍辰三) 일본 총리는 베이징(北京)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북한 핵 실험을 보고받았다. 이날 오후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김이 빠져 있었다. 북한 핵 실험이 국민의 관심을 온통 사로잡았다. 그 덕분에 두 정상은 11개월 만의 대화 재개라는 회담 자체의 의미만을 편안하게 챙겼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이유로 대화의 문을 걸어 잠갔던 노 대통령은 “변화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기보다 대화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기로 했다”는 아리송한 설명으로 넘어갈 수 있었고,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애매한 태도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양국간의 역사 갈등 불씨는 그대로 남았고, 해결 전망도 흐릿하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것이 있기는 하다. 국민의 역사감정이 고정돼 있거나 관련 정치행위의 부동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행위가 이를 좌우하며, 역사문제는 순수하게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스루가다이(駿河台)대 명예교수가 이 책에서 역사 화해의 궁극적 방안으로 들고 있는 것도 바로 정치적 결단이다. 정치지도자가 국민 감정에 기대거나 그것을 자극하는 대신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존중이 진정한 국익임을 자각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강조한다.

정치적 결단이 우선 가해자에게 요구됨은 물론이다. 한ㆍ일 관계의 성숙은 일제 식민지 통치가 남긴 역사의 앙금을 털어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며, 일본 정치 지도자는 진솔한 반성과 사죄, 보상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을사보호조약 체결 과정에서 일제가 대한제국 교섭대표들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생생한 증언을 통해 조약의 위법성을 부각한 것도 돋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는 일본 진보파 지식사회의 시각에서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홀로코스트 문제의 권위자인 저자는 세계 각지의 역사 화해 경험을 통해 정치적 결단이 어떻게 보편적 역사 화해 방안으로 자리잡았는지를 보여준다. 일본계 미국인 강제억류에 대한 미국의 사과와 보상, 하와이 원주민에 대한 미 의회의 사죄 결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네덜란드의 사과 등 다양한 사례가 소개된다. 흔히 독일과 프랑스ㆍ폴란드ㆍ이스라엘의 역사 화해가 거론되지만 가해의 배경과 상황이 많이 달라 정확한 시사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만하다.

특히 인도네시아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학대 피해자,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의 가해자 등 다면적 모습을 띠었던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일본과 역사 화해를 이룬 과정과 비교하면 한ㆍ일 간의 문제는 훨씬 간단하리란 생각까지 들게 된다. 일본에 대해 애증이 교차하는 대만이나 인도네시아의 모습에서 역사가 일방적인 가해-화해의 문제가 아님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덤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