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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탕자가 된 파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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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탕자가 된 파묵

입력
2006.10.24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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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버지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이 나중에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미리 달라고 했다. 며칠 뒤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먼 고장으로 떠났다.

거기서 흥청망청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흉년까지 들어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蕩子)'이야기다.

지난 12일 오르한 파묵(54)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해설기사 제목을 '탕자'라고 달았다. 파묵이 저만 잘 살려고 부모형제 버리고 나간 탕자의 처지라는 얘기다.

■ 하기야 조국에서는 '배신자' '기회주의자'라는 말까지 듣는 마당이니 그리 심한 비유도 아니라 하겠다. 수상자 발표 이후 터키에서는 논쟁이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이유야 어찌 됐든 터키인으로서는 처음 노벨상을 탔으니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노벨상을 탈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외국 언론에 조국을 능멸하는 발언을 해온 기회주의자이므로 진심으로 축하할 수 없다"고 불쾌해 한다.

파묵은 1차 대전 때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아르메니아인들을 대량 학살한 사실을 비난한 양심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고, 바로 그런 점이 수상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못마땅해 하는 유럽인들은 이슬람적 후진성의 증거로 논란 많은 이 문제를 즐겨 거론한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면 그의 발언이 순수한 양심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고만 보아 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작품으로 평가받고 싶다"며 정치성 발언을 거부해 왔다. 그러다 2년 전 스위스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터키에서 아르메니아인 100만 명과 쿠르드족 3만 명이 학살당한 것을 말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발언 때문에 국민모독 혐의로 기소됐다.

■ 그런데 이후 자국 언론과는 접촉을 피하다가 터키 CNN 방송에 나와서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뒤집었다. 상대에 따라 말을 바꾸는 기회주의적 처신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러시아 편에 서서 터키 마을을 습격하고 양민을 살해하고 능욕한 아르메니아인들의 희생은 말하면서 왜 우리측 희생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가?"라는 항의가 잇따랐다.

이런저런 보도를 접하면서 파묵을 근래에 보기 드문 작가로 평가하는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지식인의 발언은 전인격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새삼 떠오른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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