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핵 실험 계획이 없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발언은 대북 특사인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과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베이징(北京)회담에서 모자이크 조각처럼 흘러나왔다.
김 위원장을 19일 오전 평양에서 만나고 돌아온 탕 위원은 20일 라이스 장관을 만나 기자들이 동석한 포토 세션에서 “이번 방북은 헛되지 않았다”고 서두를 꺼냈다.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다. 그는 또 “김 위원장에게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친서와 함께 선물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면담결과가 상당한 소득이 있었고, 북ㆍ중 수뇌가 선물을 주고 받을 정도로 안정된 상태라는 것을 내비친 것이다. 이어 탕 위원은 비공개 회담에서 라이스 장관에게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상히 설명했다.
이즈음 탕 위원보다 라이스 장관을 먼저 만났던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기자들에게 “중국의 특사 방북은 양측의 상호 이해를 높였다”고 말해 상황이 달라졌음을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특히 “중국의 대북 특사가 북한 관리들과 함께 북핵 문제 타개를 위한 실무적인 협의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이 협의에 참가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이 추가적 상황 악화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대화 재개를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희망섞인 관측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중국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날 오후 한국 등 관련국들에게 탕 위원의 면담결과를 소상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측 대북 특사의 이런 성과는 미ㆍ중 등 국제사회의 압박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이후 미국과 일본, 한국이 강한 압박에 나선 것은 물론 북한의 동맹인 중국마저 북한에 등을 돌렸다. 탕 특사는 이번 방북에서 북한의 추가적 상황악화 조치가 나올 경우 ‘견결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후 주석의 뜻을 전했다.
중국 관측통들은 “탕 위원은 당근과 채찍을 모두 갖고 평양에 갔다”며 “채찍의 수위는 상당히 강했다”고 전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 정부가 대북 석유 공급 감축을 검토중인 것도 포착됐다.
이런 실무협의가 당장 6자회담 재개 등 생산적 결과를 낳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베이징의 관측이다. 베이징 외교소식통들은 “무조건적인 회담 재개를 원하는 미국과 제재 상태에서는 대화에 나설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 사이에 공간은 없다”며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제1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내세우는 대화의 재개의 조건 조차 명확치 않다는 시각도 많다.
이런 맥락에서 라이스 장관은 중국의 대화 재개 종용을 받고 “금융제재는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은 김 위원장 발언이 현상을 유지하고,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북미간에는 소강상태의 대결국면이 이어질 듯하다.
하지만 중국이 북미간 중재의 첫 단추를 끼워 운신할 공간을 확보하고, 한국도 명분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은 향후 국면 전개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제 국면이 위기고조 곡선으로 치솟지 않고 소강국면이나 해결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베이징=이영섭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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