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요리사’ 박재은(32)씨가 자신의 첫 책을 냈다. 본지에 연재 중인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를 비롯해 그 동안 써왔던 원고를 모았다. 책의 제목은 <육감유혹> (해냄 간, 1만2,000원). 사진과 요리법이 나열된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음식과 음식에 대한 단상이 주를 이루는 음식 칼럼집이다. 여행 칼럼니스트이자 라이프 스타일 사진가인 남편 임우석씨가 책 속의 모든 사진을 찍었다. 책이 무척 ‘맛있나’ 보다. 지난 주 발간됐는데 벌써 재판 인쇄에 들어갔단다. 음식과 글과 박재은씨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서울 청담동의 작은 건물 옥탑방에 꾸며진 박씨의 주방 겸 사무실을 찾았다. 육감유혹> 박재은의>
의외로 박재은씨는 덩치가 참 작았다. 박씨의 친동생인 인기가수 싸이(박재상)를 염두에 뒀던 기자의 상상은 빗나갔다. 그런데 선이 확실한 몸매며,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의 근육이며…. 작지만 다부져 보였다. 알고 보니 암벽등반까지 한단다. 먼저 음식에 대한 인연을 물었다. 입을 열자 이야기가 거침이 없다. 말도 참 다부지게 잘 한다.
박재은씨와 음식의 인연은 무척 깊다. “능력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할 정도다. 그 습관은 외할머니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씨의 외조모는 서울 토박이 양반으로 음식 솜씨가 빼어났다고 한다. 김치라도 담그면 한 조각 맛을 보기 위해 동네 아낙들이 모여들 정도였다. 외조모의 음식 솜씨를 그대로 이어받은 자식은 둘째 딸인 박씨의 어머니고, 어머니는 외딸인 박씨를 항상 부엌에 두고 키웠다. 박씨가 글을 읽자, 요리책을 들리고 당신이 하시는 음식의 요리법을 옆에서 읽게 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솜씨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박재은씨에게 요리는 생활의 일부일 뿐이었다. 학교에서는 인문 계통을 공부했고, 졸업을 앞두고 한 호텔에 인턴 사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사무실에 앉아있으니 뭔가 답답했다.
“사무실 책상 위에서 시들고 있는 꽃과 마찬가지라는 심정이었어요. 뭔가 쉼 없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없을까 고민했지요.”
그래서 자신의 ‘습관’ 같은 능력인 요리로의 길을 결정했다. 프랑스로 날아갔다. 학창시절 ‘그나마’ 성적이 좋았던 어학이 도움이 됐다. 말이 되고 음식이 되니 공부가 재미있었다. 2년의 과정을 마치자 어렵지 않게 일자리도 생겼다. 프랑스 본토에서의 유명 요리사라는 꿈이 무르익었다.
그런데 옷을 챙기러 잠시 귀국한 것이 인생을 살짝 바꿔놓았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보겠냐?”는 집안의 분위기 때문에 체류 일정이 계속 늘어졌다. 무료하던 차에 어느 잡지의 촬영용 요리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요리를 설명하는 레서피를 메모 형식으로 썼는데 그게 조금 튀었던가 보다. “아예 직접 원고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글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주저앉았다. 글운이 좋았는지, 일간지를 비롯해 다양한 잡지에서 원고 신청이 들어왔다. 방송 요리프로그램의 출연 제의도 물론이다.
“학교 내에서 친구가 달랑 한 명 정도 있을 정도로 스스로 외톨이를 만드는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요리’라는 옷을 입고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자신 있게 사람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요리는 만인의 공통 주제이고 저는 거기에 대해서 자신 있게 할 말이 많으니까요. 글을 쓰면서 한 차례 더 변했어요. 요리에 대한 가치관, 삶에 대한 생각이랄까요.”
결혼을 하고 또 한 차례 바뀌었다. 미혼이었던 칼럼 연재 초기, 주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대할 수 있는 일품요리가 칼럼의 소재였다면 이제는 그 영역이 집 부엌으로 깊이 들어왔다. <육감유혹> 의 내용을 슬쩍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다.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육감…> 이다. 연애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달콤한 사랑의 맛> ,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고소한 생활의 맛> , 가족의 음식 이야기를 쓴 <담백한 사람의 맛> 등이 각 장의 주제들이다. 비슷한 연배 뿐 아니라 어머니 세대, 심지어 음식을 만들어 본 추억이 없는 남자들에게도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다. 담백한> 고소한> 달콤한> 육감…> 육감유혹>
박재은씨는 맛글에 “스스로 중독됐다”고 말한다. “오미자술을 마시고 그 맛에 놀란 적이 있어요. 나의 세 치 혀를 물들인 그 붉은 기운을, 그 묘한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독자들도 상상할 수 있을까. 내 글만 읽고도 입 속에 침이 고이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날마다 커집니다.” 식재료 하나 썰어 넣지 않고, 온전히 글만으로 요리하는 맛을 알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계속 맛글을 쓸 계획이다.
여담으로, 지난 주 결혼한 동생 싸이와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다. “처음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에는 진짜 부담스러웠지요. ‘싸이 누나래’, ‘동생이 싸이래’라며 저와 동생을 한 세트로 생각하니까요. 제 작은 실수가 동생에게 누가 될 수도 있어 한 동안 쉬쉬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달라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을 책임질 자신이 있으니까요. 서로 붙들어주고 용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싸이의 부인 유혜연씨에 대해서는? “어디서 저런 보석 같은 아가씨가 뚝 떨어졌을까 생각해요. 너무 괜찮은 여자예요. 제가 적극적으로 밀었지요” 라는 대답이 바로 나온다. 박재은씨 남매 가족은 조금 특이(?)하다. 박재은씨가 연애할 때 결혼을 적극적으로 민 사람이 바로 동생 싸이였다고 한다. 변죽이 좋은 남편과 동생은 첫인사를 하자마자 어울렸고 금방 서로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됐기 때문이다. “두 부부의 사이도 물론 좋지만 처남 매부와 시누이 올케 사이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라며 환하게 웃는다.
참 맛나게 사는 사람들인 것 같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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