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험가 박철암 "티베트 아름다움에 빠져 23차례나 다녀왔죠"
“세계 최초 티베트 창탕(羌塘)북부고원의 무인구(無人區)를 넘어 쿤룬산(崑崙山)의 장홍호(長紅湖)까지 가는 것이 나의 목표다.” 탐험가 박철암씨의 간절한 소망이고 굳건한 의지다.
경희대 명예교수(중문과)인 박철암씨는 현역 최고령의 탐험가다. 나이를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만년 청춘(그는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여전히 진취적인 기상과 뜨거운 정렬로 티베트의 오지를 탐사하고 있다.
그는 평남 영원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동백산 낭림산 등 2,000m가 넘는 봉우리를 뛰어다니던 그에게 산은 평생 뗄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의 인생에는 언제나 ‘최초’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49년 경희대산악부를 창립했다. 국내 최초의 대학 산악부였다. 62년 다울라기리 제2봉 원정대장으로 나서는데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히말라야 도전이었다. 71년 나선 히말라야의 로체샬 원정에서는 비록 정상 정복은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8,000m 선을 넘는 기록을 달성했다. 해외원정의 선구자였다.
그가 티베트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90년. 물론 한국인으로는 첫번째 발자국이었다. 그는 “남이 이미 정복한 곳을 오른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고 말했다.
그에게 티베트는 히말라야 14좌 정복 이상의 의미가 있는 땅이다. 그는 티베트에 매료돼 지금껏 23번이나 탐험했다. 갈 때마다 새로운 오지를 찾아 나섰고 그곳에 사는 고산 식물을 사진에 담고 수첩에 기록했다.
그는 탐험을 “진취적 기상으로 미지를 끊임없이 연구해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신성한 행위”라고 규정한다. 숭고한 탐험에 일생을 걸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일제시대 다녔던 중학교 때 일을 떠올린다. 당시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옥배에 술을 담아 마시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쿤룬산에 올라 포부를 펴라. 젊은이들이여.” 이 말이 일생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탐험가 박철암의 최근 목표는 티베트 창탕고원의 무인구다. 중국 정부가 철저히 통제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평균 해발 5,000m 이상으로 일년 중 8개월 이상 얼음이 어는 동토의 땅이고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공간이다. 지도상에 선도 점도 없는 ‘지도의 공백지대’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청명한 쪽빛의 하늘, 존귀한 설신(雪神)의 꽃이 피어나고, 야생 야크와 곰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광활한 ‘미답의 땅’이다.
무인구 안에는 신비한 지점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만 가면 시계가 정지되고 라디오가 끊기며 자동차 엔진도 멈춘다고 한다. 유목민에게 들었다는 이 황당한 이야기를 그는 믿는다고 했다. 우리나 거짓말을 하지 티베트의 하늘빛 만큼이나 순정한 그들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가 티베트 탐험을 할 때였다.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한 소녀가 양떼를 몰고 가며 꽃을 뜯어 ‘삐~삐~’ 피리를 불고 있었다. 황막한 고원에 퍼지는 소녀의 꽃피리 소리에 반해 본격적인 티베트의 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카메라에 담고 연구한 티베트 고원의 꽃이 600여 종. 그는 이들 희귀한 자료를 모아 98년 ‘세계지붕 티베트 꽃과 풍물’이라는 책을 냈다. 그 이후 보강한 자료를 가지고 내년에 2집을 낼 계획이다.
박철암씨는 올 여름에도 티베트를 찾았다. 지난 7월 티베트를 철길로 잇는 칭장철도 개통식때도 현장에 있었고 꽃을 찾아 산에 올랐다. 그가 올 여름에 찾아 나선 티베트 고원지대의 꽃들을 싣는다. 해발 5,000m 가까운 곳에만 피는 아름답고 진귀한 기록이다. 박씨는 하늘길이 뚫리던 그 날의 감격과 티베트 고원의 여름 풍경을 그의 눈으로 기록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티베트의 여름' 박철암씨 글·사진 기고
티베트 칭장(靑藏)철도 개통하던 날. 7월 1일 오후6시30분. 칭장 1호 기차가 해발 5,027m의 탕구라산(唐古拉山)을 넘어 라사의 푸창꺼역으로 기적을 울리며 들어올 때 기다리던 수천명의 환영객들의 터져나오는 함성소리는 마치 화염 같았다.
그 옛날 당나라 당태종의 딸 문성공주가 토범국의 숭찬칸푸왕에게 시집올 때 장안에서 말을 타고 3개월을 걸려 일월산(日月山)을 넘어 라사에 도착하던 날 라사 시민들은 기뻐서 춤을 추며 환영했다.
그로부터 1,300년이 지난 오늘, 라사의 푸창꺼역의 수많은 소수 민족들이 각기 독특한 전통 옷을 입고 춤과 노래로 환호하는 모습은 대단했다. 더욱이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리자 그들을 맞으며 손에 든 하다(哈達)를 흔들며 "쟈시터러(扎西德勤)"라고 외치는 축복의 소리는 절정에 달했다.
이날 내가 잘 아는 장족의 어느 친구는 "이제부터 라사는 일일신(日日新)"이라고 했다. "라사의 포탈라궁 관광은 줄을 서야 하고 빠조제 상가는 호황을 누릴 것이며, 인도의 상품이 밀려오고 농민과 유목민은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며칠이 지난 후 라사역에 쏟아지는 관광객은 하루 5,000명에 달했고 호텔은 만원, 빠조제 거리는 인해를 이뤘다. 칭장 철도 개통으로 라사는 거대한 변화가 오고 있었다.
이번 나의 탐사 목적은 무인구에 있었다. 그런데 라사에 도착하니 들려오는 이야기는 얼마전 한국의 어떤 사람 5명이 불법으로 무인구로 진입하려다가 체포돼 필름 등을 모두 몰수 당하고 북경으로 압송돼 한국 대사관에 인도되었다는 것이다.
한 나라에는 그 나라의 법도가 있는 법. 타국에 가서 그 나라의 법도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참고로 티베트의 새로 제정된 등산규정을 소개하면, 제1장 2조에 시장 자치구의 해발 5,000m 이상의 독립된 봉우리를 등반시는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적고있다. 또 제5장 29조에는 비준없이 등산 활동을 할 시는 5,000위안 이상 3만위안(한화 약 39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원래 계획을 포기하고 캄파족의 고향인 칭하이성의 캄 지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쉐구라산(雪古拉山ㆍ5,300m)을 거쳐 린즈에 이르렀다. 이곳에 온 것은 린즈의 한 마을에 있는 거목 군락을 보기 위해서다.
마을에 도착하니 산 밑으로 울창한 측백나무 숲이 나타났다. 군데군데 거목들이 서있는데 그 중에 과연 '아~' 하고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하늘을 찌를듯한 거목이 우뚝 솟아있다. 2,600년 된 나무다. 수고는 50여m, 둘레는 18m, 대단히 장수한 나무다. 우리나라 용문산 은행나무의 수령은 근 1,100년이다. 그런데 이곳 거목은 아직도 수세가 왕성한 것으로 보아 1,00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관리인에게 물으니 그는 이곳에는 수령 2,000~2,500년 된 거목이 많으며 이는 모두 이곳의 독특한 자연지리 기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000년 후의 이곳을 지나는 객들은 무어라고 말할까. 길을 재촉하며 서지라산으로 올라갔다.
해발 4,200m에서 서지라산의 능선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4,800m 지역 산비탈의 양진 바른 쪽에 메코노프시스(Meconopsis) 4포기가 가지런히 피어있었다. 색깔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워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일찍이 영국 왕실 산하 지질학회가 부탄 히말라야에서 이 꽃을 발견했는데 세계 고산 식물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이라 불렀다. 이 꽃은 일년초화로 티베트에는 10여 종이 있다는데 나는 지금까지 8종류를 만났고 그들을 사진으로 간직했다.
다시 산등성이를 오르는데 아름다운 꽃은 먼 곳에서도 광채를 발하는가. 사면 곳곳에 레움 노빌레(Rheum nobile)가 마치 군왕처럼 우뚝 서 있었다. 이 꽃 역시 일년생 화초로 6월부터 가을까지 넉 달에 걸쳐 적막한 고산에서 화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키는 150cm 정도로 티베트 고산 식물 중에서 제일 크다. 밑부분은 녹색이고 꽃을 둥글게 감싼 잎인 포엽은 황색이다. 포엽은 가을에는 붉은색이 된다. 이 식물의 특징은 포엽속 대궁에 꽃이 달려있으며 포엽은 온실 역할을 한다.
티베트의 해발 4,700m 이상의 기온은 영상 2~3도. 때로는 영하로 내려간다. 곤충들은 포엽 속 아늑하고 향기 나는, 밀원이 많은 곳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밖에 나와 화분을 나른다. 식물과 꽃이 공존하는 것이다. 유목민들은 산중에서 갈증이 나면 이 식물을 뜯어먹는다. 나도 싱싱한 꽃잎을 뜯어먹었는데 시큼하면서도 뒷맛이 좋았다.
쉐렌화(雪蓮花)를 찾아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헤매는데 4,850m 지대에서 마침내 쉐렌화 3포기를 발견했다. 이 꽃은 해발 4,800m에서부터 해발 6,000m까지 자생한다. 모든 식물은 비옥하고 온화한 바람이 부는 동산에 정착하는데 이 식물은 찬바람과 눈하고는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이다. 어떤 것은 영구히 녹지않는 동토에 또는 바위 틈에 자생한다. 겉 모습만으로도 눈 덮인 벌판에 잘 어울린다. 온몸을 부드러운 솜털이 감싸고 있어 자태가 아름답다. 혹한의 환경에서 초연한 모습으로 생존하는 모습은 꽃 이상의 어떤 의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티베트에서는 이 꽃을 설신의 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발견한 꽃이 크기는 키 31cm, 폭은 18cm였다.
티베트의 여름은 천연의 화원이다. 티베트에서 칭하이성과 쓰촨성 가는 길, 수천km에 이르는 산과 고원, 하천 등지는 야생화로 가득했다. 마치 천계를 걷는 것 같았다. 칭하이성의 어느 산협이었다. 온산 전체가 황색꽃으로 덮여있었다. 참으로 놀라웠다. 바쁜 걸음으로 하천을 건너 산 밑으로 달려갔다. 바라보니 그것은 황색 메코놉시스(Meconopsis)였다.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근 20년 동안 티베트 방방곡곡을 다녔지만 이토록 산 전체가 한가지 종류의 꽃으로 뒤덮여 있는 곳은 처음이다. 참으로 대자연의 신비스러운 장관이다.
탐험가 박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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