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울진까지 도보여행을 한 적이 있다. 여행은 언제나 귀중한 것이지만 여행 중에서도 그 때의 도보여행은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런 채비도 없이 도보여행에 나서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태백산맥을 오르는 길로 접어들면서 맞는 풍광은 모든 고통을 잊게 했다.
7월이라 자갈이 깔린 비포장길은 뜨겁게 달아올라 숨이 막히는 듯했다. 하루 몇 차례 지나는 시외버스가 날리는 자욱한 흙먼지로 칼칼해진 목을 막걸리로 씻으면서 오르는 재 투성이 길은 바로 '하늘길'이었다.
■ 발바닥은 물집이 잡히고 터져 신작로 가장자리의 흙을 골라 밟아야 했지만 길은 구수한 이야기 타래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먼지를 뒤집어쓴 작은 마을 길, 주막의 술 내음에 발길을 멈추기 마련인 장터 길, 짙은 숲 그늘에 덮인 산길, 깊은 계곡을 따라 휘감아 도는 절벽길, 구불구불한 재를 질러가는 가파른 오솔길 등 수많은 길들이 이어졌다.
길을 따라 영주 봉화 법전 춘양 현동 옥방 삼근 등의 지명과 불영계곡, 태백산맥의 등줄기가 나타났는데 산맥을 넘는 길에선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동해가 저 멀리 내려다 보였다. 36년 전의 일이니 그 길은 시원스레 뚫린 아스팔트길에 밀려 잡초에 덮였을 것이다.
■ 대도시 주변의 등산로나 산책코스마다 사람들로 넘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지만 자연에 대한 갈증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시멘트길 아스팔트길이 아닌 자연상태 그대로의 흙길을 밟기 위해 일부러 오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산악자전거나 4륜구동차가 인기를 끄는 것도 잘 닦인 인공의 길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의 길을 그리워하는 심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수렵시대 농경시대의 기억은 아득히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발바닥은 맨 흙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 '제1회 문경새재 맨발 단축마라톤 및 가족건강 맨발 걷기대회'란 이색행사가 28일 문경새재에서 열린다고 한다. 아프리카 마사이족의 맨발 걸음에서 착안해 한국일보와 스포츠한국, 문경시가 주최하는 행사다.
무게중심을 발바닥 전체에 골고루 주어 맨발로 초원을 걷는 '마사이 워킹'은 아스팔트와 시멘트 등의 딱딱한 길과 신발에 포위된 현대인에겐 이상적인 건강비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들이 달빛과 별빛을 등불 삼아 오르내리던 숲속의 옛길을 마사이족의 걸음으로 걷는 느낌은 과연 어떨까.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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