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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 소리 먼저 디자인

입력
2006.10.1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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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지난달 말 출시한 '스텔스' 청소기는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청소기다. 레이더에 안 잡히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사람의 귀론 듣기 힘들 정도로 소음이 적다는 뜻에서 이름도 그렇게 정했다.

스텔스 청소기가 탄생하기까지 역발상과 상상력의 제품개발과정을 들여다보면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창조경영'과도 맥을 같이한다는 평가다.

2004년7월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에선 가전연구소와 상품기획팀의 핵심인력 9명으로 극비 프로젝트팀이 구성됐다. 일명 '스텔스'팀. 이들의 임무는 '조용한 진공청소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애완용 강아지나 고양이도 도망가는 청소기 소음은 사실 소비자들의 최대 불만 사항이었다.

통상적 발상이라면 제품을 만든 뒤 소음 원인을 찾아 이를 없애거나 흡음제를 사용했을 터. 하지만 이들은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최소화된 가공의 소음을 먼저 만든 뒤, 이러한 소리가 나도록 청소기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스텔스팀은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20여가지의 인공 청소기 소음을 만든 뒤 프랑스와 독일로 건너 가 고객 테스트를 실시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무조건 조용하면 될 줄 알았는데, 유럽의 테스트 고객들은 "소음이 너무 없으면 아예 청소가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스텔스팀은 결국 청소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최적의 소음'을 찾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 '황금의 소음'은 59㏈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일반 청소기 소음(69㏈)보다 10㏈이나 낮은 소음의 청소기를 만든다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소음 10㏈을 줄인다는 것은 사실상 소리를 10분의1로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 난제의 해결사역을 맡은 이가 주재만(45) 수석연구원. 그는 1989년 삼성전자 입사 이후 줄곧 전자제품의 소음과 진동만을 연구해온 베테랑이었다.

"청소기 소음의 가장 큰 원인은 모터와 팬 날개에서 나는 '삑'하는 소리입니다. 분당 회전수가 3만~3만5,000rpm에 달하는 청소기 모터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팬 날개의 재질과 휘어지는 각도를 새로 고안했지요. 또 흡입구와 연결되는 파이프 구조도 자동차의 머플러 원리를 적용해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스텔스팀은 무려 34개의 소음ㆍ진동 관련 특허를 낼 수 있었다. 물론 핵심 중 핵심기술은 보안 유지를 위해 아예 특허도 안 냈다. 주 수석은 "처음 만든 시제품은 소리가 59㏈ 보다도 더 작아 나중엔 일부러 소음을 더 크게 조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스텔스팀은 올해 초 최종테스트를 위해 시제품을 다시 독일과 프랑스로 갔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2년 여의 노력 끝에 지난달 출시된 스텔스 청소기는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청소를 하면서 TV를 보거나 전화통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주부들의 호평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가공의 소리부터 디자인한 뒤 제품을 현실화한 스텔스 개발과정 노하우를 다른 가전제품 개발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주 수석은 "자동차 업계에 이어 가전 업계에서도 이제 소리는 더 이상 소음(noise)이 아니라 사운드(sound)로 대접 받기 시작했다"며 "스트레스를 주는 소음은 최대한 잡고, 듣기만 해도 피로가 풀리고 활력을 주는 사운드를 가전제품에 계속 접목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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