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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8번째 시집 '호루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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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8번째 시집 '호루라기'

입력
2006.10.1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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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어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영재라 부르고, 어른이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시인이라 부른다. 이런 정의가 맞다면, 그는 천상 시인이다. 백태가 끼지 않은 그의 무구한 눈을 거치면 하찮고 비루한 것도 생의 비의를 품은 찬란한 보석으로 빛나기 때문이다.

시인 최영철(40)씨가 여덟 번째 시집 <호루라기> (문학과지성사ㆍ6,000원)를 펴냈다.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2000년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그가 <그림자호수> 이후 3년 만에 묶어낸 시들이다. 그 3년은 시인이 복작거리던 서울생활을 접고 시를 찾아 부산에 내려가 살아온 시간과 고스란히 겹친다.

“제 시는 등단작부터 일상적인 소재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차원에서 계속 씌어진 것 같아요. 일상적 소재를 다시 인식하고 우리 삶의 중요한 중심으로 끌어다 놓는 게 제 시적 세계관이라고 할까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낮고 말간 말소리에 경상도 억양이 잔잔하다.

‘생활의 발견’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이번 시집에서, 늘 거기 있기 때문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시인이 부는 ‘호루라기’의 호출을 받고 황홀한 판타지로 ‘벼락 출세’를 한다. 개울가에 부신 요강 속 오줌은 “달리기에 느린 할머니 오줌을 아버지가 들쳐업고/ 아이들 종종걸음이 놓칠세라 그 뒤를 따”(<뒷간이 멀어서 생긴 일> )르는 정겨운 가족 릴레이가 되고, 아침 여섯시는 “시침과 분침이 쭈욱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시각/…아직 게으름 피우는 것들의 머리맡에/ 호된 화살로 가서 꽂힌 시각/ 오늘은 제발 어제처럼 살지 말라고/ 이제 막 잠 깬 몽롱한 것들 앞에/ 꼿꼿한 회초리로 버티고 선 시각”( <여섯 시> )으로 재발견된다. 밥그릇과 국그릇에 묻은 벌건 양념은 “밥 한 상 받기 위해 치르고 온 전투의 잔해”( <밥상이 있는 오후> )고, 여름철이면 “내 몸은 모기의 맥박 뛰는 식탁/ 간 맞출 필요 없는 더운 밥 더운 국이/ 드럼통 가득 차려진 야식 전문 저장고/ 움푹 밥 퍼간 자리마다 숭늉이 끓고 있는/ 식지 않는 가마솥”( <야식저장고> )이 된다.

하찮은 것들을 떠받들려 무릎을 꿇은 이 시인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밥의 숭엄함을 찬미할 때다. 그 무구한 어조와 상상력에서 정현종을, 밥과 음식에 대한 사무친 태도에서 백석을 떠올리게 하는 시인은 딱딱한 쌀알이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눈송이처럼 부푸는 밥 짓는 장면(<밥> )을 통해 한 톨의 밥을 우주적 크기로 아름답게 팽창시킨다.

“다 밥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짓이니까요.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삶의 가장 중요한 행위인데, 일상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이런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요. 그런 부분들, 밥뿐 아니라 흔히 반복되고 있는 일상의 것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인가 각성해주는 게 시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997년 사고로 머리를 다쳐 뇌수술을 받은 후 지금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 죽음에 대한 달라진 생각들을 많이 담았다. “정신 못 차리고 사니까 뒷머리를 한 번 때려준 거라고 생각해요. 몇 번 수술대에 오르고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죽음이 그다지 먼 것도,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죽음을 편안한 과정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생사의 순환을 긍정하고, 타자의 고통에 동참하며, 사소한 것에서 깊은 의미를 길어올리는 이 연민과 연대의 시인은 일체의 억지와 부자연스러움, 위선과 포즈의 가면 없이 사물과 말을 나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맑고 해사한, 천연덕스러우면서도 핍진한 상상력 덕분이다. 그 상상력은 착한 시들을 멸시하는 비정한 도시의 위악자들도 무장해제시킬 만큼 눈물겹게 따습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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