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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사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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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사 증후군'

입력
2006.10.1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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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새집 증후군'이 은근히 걱정됐다. 시공 과정에서 최대한 화학물질을 억제했다는 설명은 들었지만, 집을 비울 때도 난방을 하고 환기에 애썼다.

그것이 유일한 대처방법이었다. 그 덕분일까 했다. 머리가 아프다거나 잠이 오지 않는다는 등의 이상 증세를 느끼는 식구는 없었다.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었다.

추석 차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했다. "동서들이 새집인데 괜찮으냐고 물어서 새로 가구를 장만하지 않아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집도 집이지만 가구가 문제라고 봐."

■ 이런 추측이 사실로 확인됐다. 환경부가 경원대와 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가구와 전자제품, 의류, 장난감 등 생활용품의 화학물질 방출량을 조사했다.

'새집 증후군'의 주범으로 지목된 포름알데히드(HCHO)와 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은 각각 가구류와 전자제품의 방출량이 두드러졌다. 일부 품목만이 미국 민간단체인 그린가드의 기준을 넘었다지만 검사조건과 실제 생활환경의 현격한 차이를 감안하면 얘기가 다르다.

공부방에 새로 장만한 침대와 책상, 의자, 서랍장을 넣었다면 신경 써서 환기를 하지 않는 한 화학물질 배출량이 금세 기준치의 서너 배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 '새집 증후군'이 집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닌 셈이다. 새 가구나 전자제품이 더 심각하다고 단정할 수야 없겠지만, 낡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증상을 부를 수 있고, 새집이라면 '새집 증후군'이 악화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일상적으로 보는 이사 풍경은 이런 우려와는 딴판이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되도록 새 가구를 들여놓으려 한다. 새집이면 더욱 심해서, 멀쩡한 가구가 마구 버려진다. 새 가구를 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장을 완전히 바꾼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새집 증후군'이 아니라 '이사 증후군'이라고 불러야 맞다.

■ 이사하는 김에 새 살림을 들이고 싶은 주부 마음을 모를 바는 아니다. 호사스럽게 지어지는 요즘 집에 낡은 가구를 가져가면, 밀다 만 때처럼 찜찜한 생각이 들 만하다.

그러니 산뜻한 기분을 위해 '이사 증후군' 정도는 감내하는 것이리라. 하기야 집값과 전셋값이 무섭게 치솟아 서민들의 주거안정 꿈이 점점 더 아득해지는 마당에 이런 걱정 자체가 호강에 겨운 소리일 수 있다. 아내의 헌 가구 예찬도 의심스럽다. 은행 빚을 내어 뛰어 오른 전셋값을 막으면서 곱씹었을 불만을 슬쩍 포장해서 보여준 건 아니었을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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