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지만, 올해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국내에서 나온 이런저런 수상자 예측 내지 기대 중에서도 소설가 황석영은 정확하게 선수를 알아보았다.
그는 한 달 전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 노벨문학상은 터키의 과거 국가주의 폭력을 폭로한 오르한 파묵이 받는 것이 시대정신에 맞다고 본다"고 말해 선수를 맞혔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사자(死者)의 말로 시작하는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파묵은 "독자들 가운데 서양보다는 동양의 독자들이 슬픔을 깊이 통감하며 이해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슬픔이란 물론 서양의 예술 및 문화의 강한 영향으로 우리들의 전통적인 시각 예술과 청각 예술, 창작 기법은 물론 감성까지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라고 말했다. 파묵은 자신의 조국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기인하는 동ㆍ서양 문명의 충돌과 극복 과정을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다.
노벨상 중에서도 인류의 정신적 진보라는 측면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상은 아무래도 문학상과 평화상이다. 올해의 두 상 수상자는 공히 자신의 조국이 처한 현실에서 출발해, 넘치는 상상력의 힘으로 인간정신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 이들이다.
평화상을 받은 무하마드 유누스는 조국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절대적 빈곤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미국에서 교육받은 서구 경제학 이론을 버리고 '마이크로 크레디트'라는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를 만들었다.
방글라데시어로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제도는 지금 세계 37개국에서 9,700만명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고, 터키의 역사와 현실에 바탕한 파묵의 소설은 32개국 언어로 번역돼 읽히고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듯 한국은 이런 면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엄청난 자원을 가진 나라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동양과 서양,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틈바구니에 끼여 터키 저리 가랄 정도로 충돌을 겪고 있다.
한때 전 국민 10명 중 1명이 신용불량자가 됐던 나라이니, 유누스가 말한 "신용은 가난한 사람들도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이란 주장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벨상이 대수냐고 한다면, 상을 받아야 맛이란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는 이야기다. 요즘 신문에서 작가들이 쓰는 글이 드물어졌다고 느끼는 이들 많을 것이다. 글 쓸 수 있는 전문적 자원이 우리 사회에 많이 늘어난 탓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크다. 오피니언 면을 맡고 있으니 작가들에게 글 청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무거운 글은 안 쓰려 한다.
한창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한 작가는 최근 통화하다 "말은 소통을 위한 것인데, 요즘은 입을 열면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절이 되고 만다"며 자신은 앞으로 절대 신문에 기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논객으로 알려진 한 젊은 학자는 방송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찬반론자들한테서 하도 욕을 얻어먹어 사람들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며 방송은 물론 "앞으로 공적인 성격의 글쓰기는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그들의 말처럼 매일 아침 신문들 오피니언 면을 펼쳐보면 보이느니 좌라는둥 우라는둥 편가르는 말이요, 들리느니 저주의 언어들이다. 상상력을 펼칠래야 펼칠 장이 없다.
파묵은 평소 작가의 덕목으로 "바늘로 우물을 파듯 인내심을 가지고 쓰는 것"을 꼽았다. 입 닫고 있지만 그래도 써야 하는 우리 작가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지 싶다.
하종오 피플팀장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