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비의 새 앨범 ‘Rain’s coming’은 음반보다 동명의 월드투어의 성패에 더 관심이 쏠린다. 총 예상수익이 1,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공연인데다 성공 여부가 비의 미국 시장 진출 여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만 보면 지난 13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Rain’s coming’의 무료 프리미어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공연장 한 면을 꽉 채운 거대한 무대 전체를 대형 스크린으로 변화시키는 무대장치는 국내에서 전례가 없었다. ‘내가 누웠던 침대’ ‘태양을 피하는 방법’ ‘난’ 등 팝 발라드 곡들을 묶어 뮤지컬처럼 연출하고, 노래를 끝내고 무대 뒤로 사라진 비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계속 보여주면서 공연의 흐름을 끌고 간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비는 이 공연에서 엔터테이너로서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는 전작 ‘It’s raining’에서의 탄탄한 근육질과 달리 슬림해진 몸으로 정지 동작이 많아 몸의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새 앨범 타이틀곡 ‘I’m coming’의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또 살이 빠져 날렵한 얼굴선이 드러나면서 ‘I do’처럼 밝게 웃는 미소년의 이미지를 살린 곡들의 효과는 더욱 커졌다.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몸까지 공연에 최적화시킨 셈이다. 특히 ‘I’m coming’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부터 로맨틱한 연인의 모습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표정 하나까지도 미묘하게 변화시키며 소화하는 그의 연기력은 4만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정작 음악은 주가 아니라 대형 퍼포먼스의 한 요소가 되고 말았다. 미국에서도 활동중인 프로듀서 박진영의 작품답게 ‘I’m coming’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강한 멜로디라인 대신 단순한 편곡과 후렴구 멜로디의 반복으로, 후렴구를 귀에 맴돌게 만든다. 이는 요즘 미국 팝의 트렌드지만, 저스틴 팀버레이크같은 유행의 첨단을 걷는 팝 뮤지션의 곡들처럼 음악에 빠져들게 만드는 독특한 개성은 없다.
그래서 곡만 들으면 어딘가 밋밋하다. 댄스곡 ‘With U’나 발라드곡 ‘내가 누웠던 침대’ 등도 매끈하지만 확실한 개성이 부족하다. 곡의 매력이 살아나는 건 비가 무대, 특히 대형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다. 원곡과 달리 곡 중간에 각종 효과음을 삽입해 비의 독무(獨舞)를 강조하는 ‘I’m coming’이나 한 여자의 연인을 연기하며 보는 이의 감정이입을 끌어내는 ‘내가 누웠던 침대’가 대표적인 예다.
순수하게 국내에서 활동한 가수가 미국 시장 진출을 내다볼 정도로 성장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한국 대중문화계가 그런 스타를 키워내는 스타시스템에 걸맞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엔터테이너로서 비의 역량과 외국 스태프들이 더해진 공연의 완성도, 그에 반해 ‘2% 부족한’ 음악의 불균형은 현재 한류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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