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800원대가 무너지는 등 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엔화 관련 금융상품 시장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원ㆍ엔 환율이 17일 802원으로 800원 선을 회복하긴 했으나 연초 862.47원에 비하면 60.47원(7.01%)이나 떨어진 상태다.
해외시장에서 일본 업체와 경쟁하거나 일본에 수출하는 기업들에겐 당장 비상이 걸렸다. 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한 고객도 막대한 환차손이 불가피해졌다. 반면 지난해부터 급증해온 엔화 대출 고객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일본 주식형 펀드는 10종. 펀드평가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이들 펀드의 연초 대비 수익률이 엔화 기준으로 플러스를 기록한 곳은 2군데로 가뜩이나 수익성이 신통치 않은 데다 환율 하락까지 겹쳐 원화로 환산하면 수익을 낸 펀드는 한 곳도 없다.
그나마 가장 수익률이 좋은 피델리티 일본 고배당펀드의 경우도 환율 하락분을 감안하면 연초대비 –4.38%를 기록했고 UBS 일본중소형 주식펀드B는 원금의 31.42%를 까먹었다.
펀드 가입 때 환헤지(위험회피)를 한 투자자는 환차손은 피할 수 있지만, 다른 해외펀드와 달리 일본 펀드 투자자들의 환헤지 비율은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경제가 개선되고 있는 만큼 환율이 더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아 환차익까지 노리고 가입한 투자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엔화 예금자도 환차손을 고스란히 입게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1일 현재 국내거주자 엔화예금 잔액은 23억1,000만 달러. 그나마 엔화예금 고객의 대부분이 엔화 결제수요가 있는 수입업체라는 점에서 손실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엔화대출 고객들은 웃음꽃이 필 만한 상황이다. 국내 은행과 외국은행 국내 지점을 합쳐 올 6월말 기준 엔화대출 잔액(달러 기준)은 136억5,000만 달러로 지난 1년 동안 50억5,000달러나 급증했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당국이 시중은행에 엔화대출 자제를 지도하고 있지만, 당국의 지도가 무색하게도 엔화 대출 고객들은 연 2%대의 저렴한 금리에 막대한 환차익까지 얻어 '꿩 먹고 알 먹는' 이중 수익효과를 보게 됐다.
올 초 100만엔을 대출 받은 경우 원래는 862만원을 갚아야 하지만, 17일 기준으로 보면 802만원만 갚으면 된다. 이자도 16만원으로 이자를 갚고도 44만원이 남아 5%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원ㆍ엔 환율이 거의 바닥 수준이라는 전망이 많아 이 같은 희비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세계 경제 중에서 가장 견실하고 일본 정부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많아 내년께는 원ㆍ엔 환율이 회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때문에 당장 일본 펀드를 해지하거나 신규 엔화대출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우리은행 PB사업단 한창식 과장은 "일본 주식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해지해 손실을 확정하거나 뒤늦게 환헤지를 하기 보다 일단 기다리는 게 좋다"며 "엔화 대출의 경우도 신규 대출은 피하고, 기존 대출자들은 지금 환율로 대출금을 갚을 수 있도록 매수선물환 약정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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