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혁명 당시 박해를 당한 류사오치(劉少奇) 전 국가주석의 부인 왕광메이(王光美)가 폐렴으로 13일 숨졌다고 중국 언론이 보도했다. 향년 85세.
왕광메이는 1921년 중화민국에서 외교 분야 고위관리를 지낸 아버지와 기업가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베이징 사대부중을 다닐 때는 ‘수학 천재’로 불렸으며 1939년 베이징의 푸런가톨릭대 물리과로 진학해 1943년 중국 여성으로는 처음 핵물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46년 1월 열린 국공협상때는 공산당측 영어 통역으로 참가했고, 그 해 옌안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였던 23년 연상의 류샤오치와 만나 2년 뒤 결혼했다. 59년 류샤오치가 주석이 되자 왕광메이는 빼어난 미모와 세련된 감각을 가진 ‘중국의 제1부인’으로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문혁 이전 중국에서 그보다 더 세련된 여성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문혁 4인방의 한 명인 장칭(江靑)으로부터 외국을 순방할 때 중국 전통 복장인 치파오를 충고한 대로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개 비판당하는 등 질투를 샀다.
문혁 당시 류샤오치는 고문 등 박해를 받다가 69년 허난성 카이펑의 낡은 지하감옥 시멘트 바닥에서 알몸인 채로 죽었다. 사인은 폐렴으로 알려졌고, 왕광메이는 베이징 교외의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76년 마오쩌둥이 죽은 뒤에야 남편의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왕광메이는 4인방이 숙청된 뒤 명예를 회복,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을 지냈고 산간벽지의 가난한 부녀자를 돕는 프로그램인 ‘행복공정’ 조직위원회 주임을 맡아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름다운 노후를 보냈다. 그는 만년에 남편이 했던 “다행인 것은, 역사는 인민이 쓰는 것”이라는 말로 한평생 위안을 삼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류사오치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으며, 외아들 류위안(劉源)은 현재 해방군 소장으로 군사과학원 정치위원으로 있다. 친정 오빠로는 왕광잉(王光英) 전 전인대 부위원장이 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