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일 신임 교육부총리는 최근 스타일을 톡톡히 구겼다. 12일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집행부와의 첫 상견례에서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윤종건 회장이 불참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교원노조를 만나는데 교원 전문직 단체인 교총을 부르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윤 회장의 불신이 더 크게 작용했다. 취임 2주년을 맞은 윤 회장은 1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쓴소리를 쏟아 냈다.
그는 참여정부의 교육개혁정책이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전국교직원노조가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학부모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초등교사 출신의 현직 대학 교수(한국외국어대 사범대)로 ‘미스터 바른 소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윤 회장의 ‘입바른 말’을 들어 보았다.
_교원평가제 시범 운영이 끝났지만 교육계는 여전히 어수선합니다. 교원들의 의견도 엇갈리는데요.
“교원평가제 자체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교원 누구나 평가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졸속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교육인적자원부가 시범운영 결과를 제대로 분석도 하지 않고 법제화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입맛에 맞는 쪽으로 시범운영해 놓고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평가받는 교사에 대한 입장과 학부모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요. 오직 제도 추진 자체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시범 운영 기간을 2, 3년 연장하는 게 바람직 합니다.”
_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원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교장공모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교장은 교원관련법에 전문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갖춘 자리여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전문성도 검증하지 않고 교직 경력 15년 이상 되면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다고 하면 교단은 어떻게 됩니까. 정부가 소위 교사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을 갖다 앉히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교육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보통 25년 이상 경력의 교감은 어떻게 보면 교장이 되기 위한 인턴십 과정입니다. 교장자격증 소지자 중에서 교장을 선임해야 옳습니다.”
_교원단체 수장으로서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평가한다면.
“마음에 안 듭니다. 개혁 개혁 외치는데 교육이 잘 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그런데 안 되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문제가 생기면 모두 교사 탓으로 돌리려고만 합니다. 오죽하면 ‘교육부총리는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도록 하겠다’고 한 약속이 공수표가 됐겠습니까.
이 정부 들어 교육부총리가 6명이나 교체됐어요. 능력도 검증하지 않고 쓴 결과입니다. 교육정책이 이런 식입니다.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재정 확보율 6%를 떠들어 놓고 아무 말이 없습니다.”
_공교육 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학교 현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위기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학교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교대와 사대 출신 교사들의 능력을 키우는 데 교육당국이 매진해야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해요. 유능한 교사를 길러내지 못하는 현행 교원 양성체제가 지속되면 공교육은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교육 자체보다는 오도된 교육열도 문제입니다. 지나치게 대학입시 위주로 교육이 집중되다 보니 학교 교사에게 학원 강사를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공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고 바로 세워야 합니다.”
_전교조는 교원노조로 교총과 조직의 성격은 다르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원단체입니다. 최근 여러 사안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는데요.
“전교조는 너무 강경 일변도입니다. 공부하는 학생과 자녀들을 뒷바라지하는 학부모들에게 특정 교원단체의 투쟁성이 부각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너무 앞서간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총 입장에서는 전교조와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바른 교육을 위한 건전한 경쟁자가 돼야 합니다.”
_2008학년도 새 대입제도를 두고 뒷말이 무성합니다. 일선 교사들은 입시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일부 명문대 입시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다 보니 새 대입제도가 논란인 것 같아요. 대학들이 정부 입시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대입은 대학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정부가 ‘3불(본고사ㆍ고교등급제ㆍ기여입학제 금지) 정책’이라는 사각링을 정해놓고 ‘입시 자율화’를 외치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본고사 금지 시책은 고교 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당분간 필요하겠지만 논술이나 심층면접 등 대학별 고사는 철저히 대학에 일임해야 합니다. 영어 전공 학생을 뽑는데 영어지문이 들어 있는 논술 문제를 내지 말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_국제중 설립, 자립형 사립고 확대 등 수월성 교육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월성 교육은 기본적으로 평등성 교육과 맞물려 있습니다. 현재 평준화 정책이 유지되는 한 함께 가야 할 명제인 셈이지요.
그렇더라도 평준화 정책이 ‘학력 평준화’로 이어지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수월성 교육이 평등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게 맞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에 국제중을 만들거나 자립형사립고를 늘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부가 지방분권 운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제중 설립을 저지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_교권이 추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18만명의 교사들이 가입한 최대 교원단체로서 묘안은 있는지요.
“교권은 교사의 권리이자 권위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정은 권리 확보와는 거리가 멉니다. 원래 교사에게는 ‘학습지도권’이라는 게 있습니다. 교사 개인이 만든 학습계획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일선 학교 학습계획까지 쥐락펴락하는 바람에 교권은 사라졌습니다.
권위 추락은 교사들이 잘못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교사들이 전문성을 스스로 키워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존경받아야 권위가 확보됩니다. 교총은 자체 반성과 함께 대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교원 전문성 신장 방안이지요. 자체 연수를 대폭 강화하고 교직윤리헌장도 만들었습니다. 원격연수원을 통해 사이버상에서 교사들에게 직무연수를 할 기회도 주고 있습니다. 벌써 3만명 이상 참여했습니다.”
_교총이 ‘제식구 감싸기’에 몰두한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특히 정체성을 놓고 이런 저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총이 교사 입장만 대변해서는 안 됩니다. 내부적으로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국 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앞으로 금품수수 등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교사들은 교권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교총이 교사 편인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어요.
내년에 창립 60주년을 맞는 만큼 교육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이라는 케이프레이즈를 내걸었어요. 학교는 학생들이 가고 싶은 곳, 교사는 보고 싶은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지요.”
●첫 직선회장… 길거리 회견만도 20여차례
윤종건 회장은 철저하게 '현실 참여형'이다. 집무실을 지키면서 무게를 잡던 역대 회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고 정치적이지도 않다. 윤 회장은 "정치에 욕심이 있었다면 다른 길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총 사상 첫 직선 회장으로 2004년 7월 취임한 그는 교육정책과 관련한 주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직접 전면에 나섰다. 참모진을 통해 의견을 간접적으로 개진해 오던 역대 회장들과는 딴판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2004년 9월 교총 몰래 전국교직원노조와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NEIS) 관련 주요 현안을 협의한 사실이 드러나자 교육부총리를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
당황한 교육부가 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진땀을 뺀 일화는 유명하다. 교장공모제 반대 '길거리 기자회견'을 주도하는가 하면 파탄 직전에 빠진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궐기대회에서는 머리띠를 둘렀다. 교총 관계자는 "윤 회장이 노상 기자회견을 한 횟수만 20차례 이상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윤종건 회장 약력
▲경북 고령 생. 62세 ▲대구교대, 영남대 영문과 졸.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 ▲한국외국어대 사대 교수(현직) ▲한국창의력교육학회 회장(현직)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대표(현직)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현직)
대담=김진각 사회부 차장대우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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