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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32> 클라우제비츠(178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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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32> 클라우제비츠(1780~1831)

입력
2006.10.1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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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이하 현) 장군님, 얼마 전 북한이 핵 실험을 해버림으로써 지금 한반도에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긴박하고도 암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클라우제비츠 그러면 나는 적당한 인터뷰 상대가 아닐세. 핵 시대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 아니라 종말이니까 말이야. 또, 핵무기는 두 국민국가 사이의 군사적 문제가 결코 아니니까.

현 하지만 저는 사과나무를 심기보다는 그래도 전쟁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따져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그러는 게 더 현실적이니까요.

클라우제비츠 그렇다면 내가 한두 마디 말할 자격은 있겠네.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지?

현 모두들 북한의 핵 실험을 모험주의적이고 반민족적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만,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의 지속 여부를 둘러싸고 큰 논란이 있지요. 일부 보수신문은 전쟁 발발을 우려하는 수준을 넘어 전쟁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지면을 채우고 있답니다. 아무튼 대세는 북한이 ‘민족 공조’ 노선과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무책임하게 깨버렸다는 것을 비판하는 쪽입니다.

클라우제비츠 북한도 바보가 아닌데 세계 유일의 최강대국인 미국과 한판 붙자고야 하겠는가? 중국조차도 미국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던데.

현 북한 측 말로는 “대화와 대결이 다같이 준비되어 있다”더군요. 그러면서 또 유엔 등을 통한 제재에 대해서는 그것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면서 또다른 ‘물리적 대응’이 준비돼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클라우제비츠 미국이 당장 취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이 없다면 사태는 장기화하겠구먼. 도대체 핵 실험을 한 북記?계기와 명분은 무엇인가?

현 지난 수년 간 북한의 도발을 악의적으로 무시해오면서 대화를 거부해 온 부시 정권이야말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는 거죠. 북한의 주장은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이고, 당장의 목표는 금융제재를 해제해 달라는 겁니다.

클라우제비츠 핵무기 개발에 생존 논리를 갖다 붙인 것은 크게 봐서 소위 ‘정의의 전쟁’(Just ㅉar) 논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네. 정의의 전쟁은 로마시대 키케로부터 시작해서 중세 때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쳐 근대에 들어와서는 그로티우스나 칸트도 언급했던 것일세. 현대에는 니버라든가 틸리히와 같은 신학자들도 한마디씩 보탰고 말이야. 하지만 핵무기는 정의의 전쟁하고 전혀 상관이 없다네. 비전투원을 포함해 무고한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기 때문이지. 정치학자이자 윤리학자인 왈처가 이미 논증했듯이, 핵무기는 정의의 전쟁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네.

현 장군님은 전쟁에 대해 윤리적 관점을 배제하려는 현실주의적 입장에 섰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정치에 대해 그러했듯이요. 그런데, 핵무기가 정당화할 수 없다는 얘기는 아주 뜻밖입니다.

클라우제비츠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네. 하나는 ‘현실적 전쟁’에 대한 내 지론일세. 내 책에서 나는 맹목적인 국민적 적대감 등에 기초해 상호작용에 의해 극단으로 치닫는 절대적, 무제한적 전쟁에 대해 말한 바 있네. 하지만 현실적 제약과 실제적 개연성에 의해 모든 전쟁이 현실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강조했다네. 정치 현실이 전쟁에 대해 가하는 제약은 물론이고 전쟁이나 전투 자체에서의 제약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네. ‘전쟁에서의 마찰’이라는 게 그것이지.

현 네,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전쟁이나 전투에서 ‘안개’라는 거죠. 계산하거나 계측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요인들, 혹은 실제로 부딪혀 봐야만 알 수 있는 우발적인 요소들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거죠.

클라우제비츠 그런데, 핵무기라는 것은 이 우발성으로 인한 위험을 극대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주 심각한 거야. 왈처 식으로 표현하면 “핵무기가 정의의 전쟁론을 폭발시킨다”는 게 되겠지. 억압자에 대항하는 피억압자의 전쟁이 정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핵무기만은 안 되는 거야.

현 다른 하나는요?

클라우제비츠 냉전 체제 아래에서 제3세계 국가가 보여준 핵무기의 역설 때문이네. 예컨대, 파키스탄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핵무기 개발은 그 나라의 가난과 악순환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네. 핵무기 개발에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다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인민들이 먹을 게 없는데 핵무기를 개발해서 체제를 지키겠다는 것이야말로 아주 바보 같은 사고방식이라네. 굶주리는 인민들이 과연 그런 체제를 지켜야 할 이유가 뭐겠나?

현 …(쩝). 아무튼 사태가 심각한 만큼 북미간 직접 대화에 미국이 나서야 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반면 미국의 꼴통 보수들이 노리고 있는 북한 체제의 급작스런 붕괴야말로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에서 재앙일 수 있다는 거지요.

클라우제비츠 물론 원초적으로 되돌아가서 따지자면,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때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은 적도 없고,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다른 나라로 수출할 때 선박이 검색 당한 적도 없지. 현재의 글로벌 핵무기 체제가 미국의 패권주의 아래 놓여 있어서 워낙 불공정한 게 사실이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은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해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인 유일한 나라야. 미국이야말로 핵무기 보유국 중에서 제일 위험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무기는 용납될 수 없다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핵무기는 결코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네. 승리나 체제 유지도 마찬가지야.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선택을 다시금 음미해 봐야 할 것이네.

현 그렇다면 김정일이야말로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가능한 것을 희생시키는 사람’이란 말씀이신 거네요. 핵무기가 전쟁 자체의 종말이라고 한다면, 그럴수록 더욱 정치와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겠군요. 국제정치학자들이 “냉전 체제로 되돌아간다”, 혹은 “포스트 탈냉전 시대로 돌입했다”고들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도 있다는 거네요. 그럼, 다음에 또.

문화비평가 이재현

■ 클라우제비츠(1780~1831)

프로이센의 군인이자 군사 이론가. 사후에 미망인이 유고를 모아 출간한 ‘전쟁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12세에 군에 들어가 13세 때 사관생도로서 프랑스군과 싸웠다. 1804년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 1806년 프로이센군을 격파했을 때 그는 포로가 되어 1808년까지 프랑스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

프로이센의 정치적, 군사적 붕괴를 목격한 그는 귀국후 프러시아군 개혁에 참여한다. 1810년 그는 한 살 연상인 마리 폰 브륄(Marie von Brühl) 백작부인과 결혼함으로써 베를린의 문단과 지식인 사회에서 사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1812년에서 1813년 사이에 그는 유럽 전체의 평화를 위해 러시아군에서 근무를 한 뒤 귀국해 3군단 참모장이 돼 워털루전투에 참전한다. 1818년 소장으로 진급했지만 프로이센에서 보수반동 세력이 득세하자 개혁파였던 그는 한직으로 밀려나 베를린전쟁학교 교장이 되어 ‘전쟁론’을 집필했다. 그는 콜레라로 사망했다.

3부 8편 125장으로 구성된 ‘전쟁론’에는, 전쟁의 본성과 개념, 절대적 전쟁과 현실적 전쟁, 목적과 수단, 이론과 실제, 전략과 전술, 방어와 공격, 주력회전, 정신적ㆍ심리적 요소들의 의미, 계측할 수 없는 요인과 마찰 요인의 역할, 국민전쟁, 전투력의 시간적ㆍ공간적 집중원리, 배합과 중심의 개념 등이 설명돼 있다.

‘전쟁론’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명제들도 적지 않다. “전쟁은 정치의 한 도구” “전쟁은 다른 수단들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불과하다” “전쟁은 정치라는 펜 대신 칼을 사용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20세기에 이루어진 핵무기의 확산이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을 낡은 것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는 반면, 헨리 키신저 등 국제정치 및 군사 이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핵무기 시대에 ‘폭력의 관리’를 연구할 수 있는 이론적 준거를 주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전쟁론’제8편 ‘전쟁계획’의 마지막 부분에서 클라우제비츠는 당대의 주적으로 상정하고 있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상대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독일연방, 네덜란드, 영국 등이 연합해 전쟁을 수행하는 가상적 상황을 사례로 들고 있다. 이 전쟁계획에서 그는 독일연방의 임시적인 군사적 통일이라는 그릇된 노선을 비판함과 동시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군사적 독자성을 강조했다. ‘전쟁론’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조건에서 통일은 불가능하며,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가능한 것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바보다.” 1870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던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채 독일을 통일시켜 1871년 독일제국을 세웠다. 이런 역사적 전개를 놓고 보면, 아담 스미스가 근대 국민국가의 경제학을 창설했듯이, 클라우제비츠가 근대 국민국가의 전쟁이론을 창설했다는 평가는 아주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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