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는 자주 거론되지만 경제학 교과서에는 없는 경제용어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국가경쟁력이다. 일반 상식인들은 쉽게 사용하는데도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 개념이 이론적으로 명쾌히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경쟁력이란 개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일본이 경제강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의 국제수지가 큰 적자를 보이게 되자 미국이 국제적 경쟁에서 낙후된다는 우려 속에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산업경쟁력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경쟁력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게 한 이후이다. 이 위원회는 국가경쟁력을 한 국가의 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는 경쟁을 통해 자국 시민의 소득을 높이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정의하였다.
●교과서에는 없는 개념
이에 대해 순수 국제경제학 이론가들은 기업경쟁력은 정의될 수 있으나 국가경쟁력은 정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국제 시장에서 기업이 경쟁을 하는 것이지 국가끼리 경쟁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수지의 흑자를 보인다고 해서 국가경쟁력이 높다고 할 수도 없다. 미국이 엄청난 적자를 보이지만 미국을 국가경쟁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경쟁력 개념에 대한 비판은 정태적 비교우위론의 관점에서는 당연하다. 이 이론에 의하면 국제무역은 상호이득을 가져오는 것이지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각국은 나름대로 비교우위산업을 갖게 되는 것이고 이 비교우위는 무역의 방향만을 결정해 줄 뿐 각국의 생활수준 곧 소득의 결정과는 무관하다. 각국의 소득수준은 각국의 생산성을 의미하는 절대우위에 의해 결정된다. 이때 각국의 생산성은 그 나라에 존재하는 생산요소와 기술에 의해 좌우되며 국제적 경쟁과는 관계가 없다.
이러한 순수이론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쟁력이란 개념은 줄곧 사용되고 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은 국가경쟁력을 한 국가의 생산성 수준 자체보다는 그 수준을 결정해 주는 제도와 정책과 기타 요인들로 정의한다.
생산성은 국민들의 지속적인 생활수준을 결정해 주는데 경쟁력이 있는 국가란 바로 이 생산성을 중장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다시 말해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제도와 정책과 기타 요인을 지닌 경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정의는 순수 국제경제이론의 비판을 피해가는 정의가 될 수 있다. 외국과의 경쟁에 의해서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과 기타 요인의 개선을 통해서 자국의 경제성장을 높이는 국가가 경쟁력 있는 국가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정의에 따라 최근 WEF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세계 주요 61개국 중에서 24위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의 19위보다 무려 다섯 순위나 하락한 결과이다. 이는 아시아 신흥국가인 싱가포르(5위), 대만(13위)에도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앞으로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전망이 결코 밝지 않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한국 경쟁력 하락 원인은 정부
특히 경쟁력의 요인별 순위를 볼 경우 보다 심각한 우리 경제의 문제가 발견된다. 우리 경제의 기술준비도(18위)와 혁신잠재력(15위)은 비교적 높은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데 비해 정부제도 부문에서 47위, 시장의 효율성 면에서 43위를 기록하고 있어 한국의 경제성장을 발목잡고 있는 것이 정부의 정책과 규제에 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낮은 것은 바로 정부의 경쟁력이 낮음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WEF의 한 관계자는 이 점에 빗대어 오히려 한국은 정부만 잘 하면 쉽게 국가경쟁력 순위를 높일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하락의 원인이 바로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며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국가의 제도와 정부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할 것이다.
이영선ㆍ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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