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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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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비둘기

입력
2006.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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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선배가 찹쌀을 조금 수확했다며 현미로 도정해서 한 봉지 보내준 지 꽤 됐다. 오랜만에 봉지를 열어봤더니 여기저기 낟알들이 몽글몽글 뭉쳐 있다. 잘 여며놨는데도 여름 새 벌레가 생긴 것이다. 부지런히 먹을 걸! 한 홉 반쯤 남아 있다. 차마 버리지 못하겠어서 비둘기나 주려고 봉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남산공원을 향해 걷다가 한 연립주택 앞 비탈길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만났다. 비둘기는 마침 모이를 찾아 시멘트 길 위를 꼼꼼히 살피며 어정거리고 있었다. 얼른 먹이고 싶었는데 봉지를 묶은 매듭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 사이에 어떤 사람이 걸어오자 비둘기가 날아가 버렸다.

오후 두 시는 비둘기들 낮잠 시간인지 남산공원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동물원 윗길에서야 몇 마리 비둘기를 발견했다. 공작비둘기 우리의 지붕에 드리워진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봉지를 열어 안에 든 것을 땅바닥에 쏟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비둘기들이 내려오지 않았다. 하릴없이 분수대를 돌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다시 가보니 비둘기들이 와글거렸다. 몇 마린지 세어 보는데 비둘기들이 가만있지 않고 어른어른 움직였다. 눈 나빠지게!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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