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은 전 세계를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와 여당은 갈팡질팡하면서 절대다수 국민의 요구를 외면한 채 국민합의 창출 노력은커녕 ‘마이 웨이’만을 고집하고 있다.
핵실험 성공 여부나 그 규모, 추가실험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과 이를 공식발표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의 단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핵실험으로 북한은 국제사회가 설정해놓은 일차 금지선(레드라인)을 넘어섰고 마지막 금지선인 핵무기와 그 기술의 해외판매 단계만 남겨놓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위급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응책 구상은 지극히 혼란스럽다. 정부여당과 정치권의 대립적인 견해와 대응책, 그리고 좌ㆍ우익의 치열한 논쟁은 또다시 좌우 이념갈등과 분열을 촉진시키고 있다.
북한 핵실험은 세계사적인 대사건이다.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 붕괴에 이어 12월초 지중해 몰타섬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합의하고 공약한 ‘냉전의 종식’과 ‘협력의 시대’ 선언 이래 틀이 잡힌 탈냉전의 국제안보질서체제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그동안 걸프전쟁, 코소보전쟁, 아프칸과 이라크전쟁 등에서 소련 중국 독일 프랑스 등이 사안에 따라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기는 하였지만 정면도전을 한 적은 없었다. 아직 공산주의 국가로 남아있는 중국 월남 리비아와 쿠바도 미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국제안보체제(단ㆍ다극체제)에 정면도전을 하지는 않았다.
김정일이 드디어 21세기 탈냉전 국제안보체제에 정면도전하는 ‘자살 게임(치킨 게임)’을 시작했다. 만일 이 국제안보체제의 주 책임국가인 미국이 김정일에 양보하여 물러선다면 핵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와 9ㆍ11 테러 이후의 범세계적 대테러전쟁으로 집약된 21세기 국제안보질서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동북아 지역 차원에서 보면 향후 핵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경쟁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로 전략할 운명에 직면해있다. 북한 주민들은 외부의 안보위협을 조작하고 과장하는 김정일의 핵무기놀음 때문에 항구적인 ‘고난의 행군’을 강요당하는 인질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한국 정부와 여당 및 좌파세력들은 북한의 핵실험이 미국의 정책 실패 때문이니 미국의 해법을 따를 수 없다고 하면서 ‘핵무기 불용납과 평화적 해결’ 원칙만을 되뇌인다. 중국까지 가서 하나마나한 이 원칙을 재확인했다.
정부로서도 강하게 나가야 할 때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 유엔에 강력대응을 요구해야 하는데도 지켜보겠다느니 적절한 대응책을 지지한다는 식의 소극적 자세로는 안된다. 강력한 대북한 규탄성명은 왜 안하는가?
최소한 일본이나 호주 정도의 대북제재에는 참여해야 할 게 아닌가? 국무총리마저 포용정책의 실패를 인정한다고 했다가 미국책임론을 들고 나오고, 대통령은 ‘북핵 불용’ 원칙을 말하면서도 대북지원(포용정책)을 계속하겠다는 왜곡된 이중성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여당의 정책 혼선과 잘못된 대응책 선택에 국민만 죽을 노릇이다. 이제 더 이상 국론
을 좌ㆍ우로 분열시키지 말고 통합의 지도력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류재갑ㆍ경기대 교수ㆍ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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