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 핵실험 사태 해법 "北은 대화 안할 것… 국제공조 강화" 주장도
미국과 북한이 일대일 직접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줄기차게 미국과의 '딜'을 요구해온 북한을 외면하면서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핵실험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고유환 교수는 "북한이 마지막 카드를 던진 셈이니 (미국만 나서면)오히려 해결이 쉬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현준 연구위원도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정전체제에서 계속 대립해 온 미국과 북한의 갈등 악화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인 만큼 두 당사자가 '결자해지'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현재 상황에서 북미 양자회담은 이상에 가깝다는 현실론을 들어 6자회담 재개를 해법으로 제시한 전문가도 적지 않았다. 이상현 실장은 "부시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한 북미 대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조금이나마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다자 틀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양자협상 못지않게 6자회담의 틀도 중요한 만큼 둘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성장 연구위원은 "북미 양자협상과 6자회담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두개의 수레바퀴"라고 지적했고, 김기정 교수는 "6자회담을 재개한 뒤 그 안에서 북미 양자회담을 기술적으로 병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엔 제재 등 국제사회 공동의 압력이나 한미동맹 강화 등을 해법으로 꼽은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을 과연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에 근거한 주장을 폈다. 윤덕민 교수는 "북한의 입장은 자신들의 핵 능력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미국이 대화에 나서더라도 타결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결국 유엔 결의를 충실히 따르는 게 해법"이라고 진단했다. 조성렬 실장도 "북해 사태의 최대 당사국인 한국의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내정돼 우리 정부의 운신 폭이 오히려 더 좁아졌다"면서 "단기적으론 유엔 결의 등 국제움직임에 협력하는 수준에서 국제공조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놓고는 찬반이 극명하게 갈렸다. 서동만 교수는 "국제적 고립 상태에 빠진 북한이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낄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유길재 교수는 "우리 정부가 북한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북한이 우리 말을 듣겠느냐"고 반박했다.
2. 북한 핵실험의 원인 "부시 대북 강경책이 위기 불러" 압도적
북한 핵실험의 근본 원인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 일변도 정책에 따른 북한 나름의 대응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번 조사항목 가운데 단일의견으론 가장 많은 표를 얻었을 정도로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백학순 실장은 "역설적이지만 북한에게 핵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려는 방법론의 하나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핵실험은 '우리가 핵을 만들었지만 포기할 테니 대신 안전을 보장하라'는 북한의 메시지를 부시 행정부가 계속 외면한 데 따른 반응이라는 분석이다.
정성장 연구위원은 "북핵은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지만 개발 동기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항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 핵실험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990년대 초 1차 핵위기 이후 벌어진 북미 협상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은 "북한이 다시 2차 핵개발에 나선 것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불량국가로 간주한 이후부터"라고 설명했다. 부시 행정부는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데 이어 클린턴 행정부가 맺은 제네바 협정을 일방적으로 깨뜨렸고, 2004년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켜 북한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 것이 결국 북한의 핵실험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지난해 북한이 6자회담의 틀 내에서 핵 포기에 합의했음에도 불구, 부시 행정부는 대북 금융제재를 하는 등 지금까지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키기 위한 노력 대신 강경 일변도의 정책만 펼쳤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의 동반책임론도 제기됐다. 서동만 교수는 "참여정부가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소홀히 하고 6자회담에만 맡겨둔 데 따른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핵실험이 체제위기 탈피 또는 대남 군사우위 확보 목적이라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윤덕민 교수는 "북한은 88올림픽 이후 남북간의 경제력 격차가 심화하자 체제 유지에는 핵무장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며 "북한이 핵확산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한 핵은 필요하니 핵 능력을 묵인해 달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성훈 연구위원은 "북한이 미국의 위협 때문에 핵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남북간 군사대치 상황에서 남한을 군사적으로 압도할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3. 대북포용정책 유지 여부 "현 기조 유지" "제재도 병행을" 팽팽
북한에 각종 물자를 지원해 준 포용정책이 결국 북한 핵실험의 빌미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사회 일각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거의 한 목소리로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거의 억지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유길재 교수는 "북한을 포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핵실험을 한 것이지, 포용정책 때문에 핵실험을 했다고 보는 것은 쓸 데 없는 피해의식"이라고 말했다. 이 근 교수는 "우리 정부가 압박정책으로 돌아서면 북한이 핵 대량생산 체제로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포용정책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에 필요한 자원 마련을 도와 그 시기를 앞당겼을 수 있다는 점은 지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포용정책이 앞으로도 우리가 가야 할 큰 방향이라는 데는 역시 거의 모든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다만, '큰 틀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를 유지하자'는 입장과 '제재를 병행하는 등 어느 정도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반반으로 갈렸다. 백학순 실장은 "대북 압박정책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고, 더욱이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대화와 협상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다"면서 "중간선거를 의식한 부시 행정부가 당분간 대북 비난과 강경책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섣불리 의견을 내놓으면 여기에 휘말리게 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전문가 중에서도 지금은 채찍을 들어야 할 때라는 입장이 만만치 않았다. 윤덕민 교수는 "포용정책의 대전제는 튼튼한 안보인데, 현 정부 들어 이 원칙은 사라지고 일방적인 퍼주기로 변질된 측면이 없지 않다"며 "원칙이 훼손된 만큼 포용정책의 수정도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김기정 교수는 "포용정책의 실효적 당위성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계속 포용에 매달리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수 있으므로 포용과 제재를 병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동만 교수는 "참여정부는 포용정책을 '평화ㆍ번영정책'으로 부르고 있으나 동북아시아를 범위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대중 정부 당시 사용했던 '화해ㆍ협력정책'이 오히려 적절하고 미국의 대북정책까지 포함한 의미에서는 '개입 또는 관여(engagement)정책'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며 "용어 사용에서도 정부의 소극적이고 수세적 자세가 엿보인다"고 꼬집었다.
4. 남북 경제협력사업 중단 여부 "조정 불가피" 공감속 "가급적 유지"우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협력사업은 ‘유엔 제재 결의에 따른 조정은 불가피하나 가급적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현명하다’는 의견이 ‘우리가 먼저 나서 줄여야 한다’거나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압도했다. 사업규모와 범위 등의 속도조절은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공세적인 대응보다는 수동적인 자세가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셈이다.
먼저 두 사업이 갖는 경제적 효과 못지않게 중요한 부수적 효과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동만 교수는 “두 사업으로 북한이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론 중무장한 군사지역을 양보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면서 “휴전선에 인접한 북한의 동ㆍ서부 지역에 평화지대가 존재해 간접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효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유환 교수는 “만약 경협을 중단하면 해외 투자가 안 들어오고 결국 국가 신인도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경협사업의 유지를 주장한 전문가들도 대부분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 범위 안에서의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답했다.
정부가 민간분야 사업에 개입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김영수 교수는 “정부가 민간사업을 중단시키면 결국 손실액을 물어줘야 할 텐데 사실상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유길재 교수는 “정부가 나서지 말고 민간 자율에 맡겨야 한다”면서도 “현대그룹의 경우 북한보다 미국과의 거래규모가 훨씬 클 텐데, 만약 미국이 강하게 나온다면 대북 경협사업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속도조절의 방법론으론 정부의 직접지원 중단 및 연기를 꼽는 의견이 많았다. 정영태 연구위원은 “정부가 세금으로 학생, 교사 등의 금강산 관광을 지원하는 것은 당분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욱 교수는 “금강산의 경우 협력기금은 중단하되 관광은 시장원리에 맡기고, 개성은 신규분양을 불허하되 기존 투자부분은 유지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김성한 교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북제재)수단이 몇 개 안 된다”며 속도조절론을 지지했다.
반면, 이상현 실장은 “정부와 민간부문 모두 사업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며 “남북관계의 경색을 우려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수는 없다 ”고 주장했다.
5.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여부 참여론자도 "北 해상 직접봉쇄엔 빠져야"
미국이 주도하는 PSI에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PSI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참관 단계인 현상황을 유지하자는 입장(9명)과 참여는 하되 북한에 대한 직접적 해상 봉쇄에는 빠져야 한다는 의견(8명)이 엇비슷했다.
두 입장 모두 PSI에 적극 참여할 경우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야기, 한반도의 위험지수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미국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계산을 깔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의 작전을 포함, PSI에 전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적극 참여파(3명)도 일부 있었다.
참여 반대론자들은 "PSI 자체가 군사 조치이며 해상 봉쇄는 정전협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이철기 교수), "우리 함정이 북한 선박을 검문할 때마다 위기가 반복될 것"(백학순 실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현준 연구위원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든 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것"이라며 "남북한이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 고 말했다. 김기정 교수도 "PSI가 유효한 수단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먼저 나서서 하겠다고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성장 연구위원은 북한에 대한 '경고용'으로 선별적 참여의 필요성에 무게를 뒀다. "마약거래와 대량살상무기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공동작전에만 제한적으로 참여하면서 북한에게 PSI에 전면 참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현 실장 역시 "북한만을 바라보는 정책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뿐더러 PSI 강화는 국제사회의 큰 흐름"이라며 "다만, 참여하더라도 남북간 직접 접촉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렬 실장은 "우리가 한반도 해역에서 검문을 하면 즉각 북한의 보복 공격대상이 될 것"이라며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해역에서 미국 호주 일본 등 우방들과 공동검역에만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태효 교수는 "PSI 출범 때부터 참여했어야 했다"면서 "(북한의)핵확산 방지에 부합하는 방향인데 못할 이유가 없다"고 전면 참여론을 폈다. 유길재 교수도 "PSI에 참여한다고 해서 포용정책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나쁜 짓을 하면 그에 맞는 제재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ㆍ이태희ㆍ김용식ㆍ안형영기자 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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