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말랐는지 아무리 땅을 파도 지하수 한 방울 안나와요.”
충북 제천시 수산면 율지리 주민들은 요즘 틈만 나면 지하수 구멍을 뚫고 있다. 가뭄으로 식수원인 마을 계곡물이 완전히 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이 마을 장용식 (64)이장은 “지난달부터 지하 120㎙까지 들어가는 관정을 6번이나 팠는데 한 번도 물길을 만나지 못했다”며 “이렇게 지독한 가뭄은 처음”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을 가뭄이 극심하다.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지하수까지 말라 버렸다. 이상 고온 현상까지 겹치면서 단풍은 본디 때깔을 잃었고 때 아닌 모기와 해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15일 기상청과 전국 자치단체에 따르면 전국 대부분 지역은 8월부터 두 달 이상 강수량 부족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8월 초 이후 현재까지 강수량이 88.3㎜로 예년 같은 기간 평균치에 비해 18%에 불과하다. 강원, 경남, 경북 지역도 9월 이후 강수량이 예년 평균의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충남과 충북은 최근 한달 동안 불과 0.5㎜에 그쳤다. 기상청 관계자는 “높은 기온을 유발하는 고압대가 장기간 우리나라에 머물러 강수와 바람이 적고 일사량이 강하다”며 “다음달까지는 더운 날씨가 계속되겠다”고 밝혔다.
직격탄 맞은 농작물
가뭄이 계속되면서 배추, 무, 당근, 콩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콩은 생육 부진으로 수확량이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콩을 재배하는 황모(68ㆍ전남 순천시 승주읍)씨는 “이미 수확한 콩은 가뭄으로 열매크기가 작아졌고 수확량도 30%정도 감소했다”고 말했다.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김동수(50ㆍ충북 괴산군 청안면)씨도 “배추와 무에 뿌리가 썩는 무사마귀병 등 각종 병해충이 번지고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강원도 특산품인 양양송이 채취량은 작년의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추석 직전 kg당 30만원 초반대였던 송이 가격(상품 기준)은 현재 61만원으로 70% 이상 폭등했다.
식수난에 모기도 기승
식수난을 겪는 지역도 늘어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등 전국 30여개 마을이 소방차로 식수를 공급받고 있다.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모(45ㆍ강원 원주시)씨는 “이 달 초부터 소방차가 실어다 주는 물로 겨우 밥만 지어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상 고온 현상으로 때아닌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청주시 복대동에 사는 오세동(44)씨는 “모기가 기승을 부려 장롱에 넣어두었던 모기장을 다시 꺼냈다”고 말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올 여름 거의 접수되지 않았던 방역민원이 최근 하루 수십건씩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산불가능성도 높아
산림청은 예년보다 한 달이나 앞선 이 달 초부터 산불 경계에 나섰으며, 산불 피해가 컸던 강원도는 최근 진화용 헬기를 원주와 강릉에 1대씩 추가 배치했다
더욱이 어느 해보다 화려한 단풍을 보리라던 기대도 가뭄이라는 복병을 만나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9월 중순 대청봉에서 시작한 설악산 단풍은 해발 700㎙까지 내려왔지만 잎이 말라 부스러지고 검은 반점이 생기는 등 제 빛을 잃어가고 있다. 충북 속리산 천황봉과 문장대 부근도 잎이 누렇게 마르면서 타들어가 등산객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청주=한덕동기자 ddhan@hk.co.kr울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