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양영희(42) 감독이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참관차 왔다. 그는 최근 데뷔작인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으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곡절 많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재일동포의 아픔을 그린 ‘디어 평양’은 올해 베를린영화제 넷팩상, 미국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11월에 국내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아버지 양공선씨는 조총련 핵심 간부였다. 30년 넘게 조총련 오사카(大阪)지부 부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여전히 ‘김일성 대원수님’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 오빠 3명은 1970년 ‘귀국사업’으로 북에 건너가 평양에 정착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인데 ‘귀국’이라니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양 감독은 11년이 지나서야 평양을 방문, 오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북한을 자주 찾던 그는 95년 조카들의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으면서 ‘디어 평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각본 연출 촬영을 혼자서 해냈다.
영화가 일본에 소개된 이후 ‘디어’(Dearㆍ경애하는, 소중한, 그리운이라는 뜻)라는 제목 때문에 오해도 많았다. “저에게 평양은 ‘혁명의 수도’가 아닌 그립고, 소중한 사람이 사는 장소일 뿐입니다.” 영화에는 양 감독과 아버지와의 갈등이 비쳐진다.
조총련 학교에서 북한식 교육을 받았지만 자유분방한 일본 사회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에게 커다란 반발심을 가졌다. “서른 전까지는 같이 밥도 안 먹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어요. 오빠들을 북에 보낸 것 등 아버지의 정치적 선택에도 많은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찍으며 부모님의 결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겠더군요.”
양 감독은 2년 전 북한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념에 따른 선택은 아니었다. 북한 국적으로는 해외 활동에 불편이 많았기 때문이다. 교사 생활을 거쳐 연극 활동을 했던 그는 다큐멘터리에 빠져들어 37세에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 국적 변경 말도 못 꺼내게 했던 아버지가 ‘국적 선택을 너에게 맡긴다’고 하셨을 때 너무 깜짝 놀라 카메라를 떨어뜨릴 뻔했어요.”
양 감독은 지난해 영화를 완성한 후 아버지를 첫 관객으로 모시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화를 보지 못한다.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후유증으로 눈을 20초 이상 뜰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북한에 있는 손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살아온 길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았다며 고마워하십니다.”
부산=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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