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의 저자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일한 생애 마지막 10년을 포함해 평생을 박물관에서 보내며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힘썼던 그는 고미술 뿐 아니라 현대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당대 제일의 감식안을 지녔던 그는 인품 또한 훌륭해서 따르고 존경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가 살았던 서울 성북2동 한옥에서 ‘최순우를 사랑한 예술가들 1’ 이라는 이름으로 18~31일 작은 전시회가 열린다. ‘아름다운 인연, 그리운 정분’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전시는 한국 근현대 미술의 대표적 화가들인 김환기, 박수근, 김기창, 천경자가 그에게 보낸 연하장과, 그가 이들에 대해 쓴 글을 선보인다.
최순우가 1976년 사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이 집은 시민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2002년 시민모금으로 사들여 최순우 기념관으로 운영 중이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사라지거나 망가질 위험에 처한 자연유산이나 문화유산을 사들여 지키는 운동으로, 최순우 옛집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시민문화유산 1호다. 이번 전시는 이 집이 지난달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고 박물관 등록을 마친 것을 축하하는 행사다.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이른바 ‘튼 ㅁ자’ 형태를 이루는 이 집은 193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이 집을 원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보수하고 최순우가 쓰던 가구와 물건들을 갖춰 기념관으로 꾸몄다. 매년 가을 소규모 전시 외에 봄 가을로 문화 강좌를 열고, 지역 주민이나 주변 공부방 아이들을 초대해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박제된 유산이 아닌 살아 숨쉬는 집으로 꾸려왔다.
전시에 나오는 화가들의 연하장은 최순우에 대한 깊은 우정과 존경을 보여준다. 김환기가 1963년 말 뉴욕에서 보낸 연하장은 머리에 새를 얹은 사람을 그리고, “순우 존형(尊兄), ... 눈이 내립니다. 서울 눈이 그립군요. 정말 외로움과 그리움에 살고 있어요”라고 썼다. 천경자 그림의 본질을 ‘찬란한 슬픔’이라고 알아봤던 최순우에게 천경자는 열두 띠 동물 그림과 함께 고마움과 친근함을 표하는 연하장을 보냈고, 김기창은 1977년 말 유럽 여행 중 보낸 연하장에서 1년 전 사별한 아내 박래현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연말이면 직접 목판화로 연하장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던 박수근이 최순우에게 보낸 것도 나온다.
가을 볕이 따사로운 요즘, 최순우 옛집 마당에서는 감나무, 아가위나무, 산수유나무의 붉은 열매가 익어가고, 뒤뜰에는 동자석, 돌확 등 석물이 가을 바람을 쐬며 졸고 있다. 방 안에 놓인 가구며 물건은 최순우의 안목 그대로 조촐하고도 기품이 있다. 툇마루에 앉아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집이다. (02)3675-3401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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